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ㆍ1906~1962)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손에 넘어갈 뻔한 우리 문화재 수 천 점을 사들여 오늘에 전한 수집가다.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혼신을 다한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문화재 목록에는 큰 구멍이 났을 것이다.
그가 세운 간송미술관(서울 성북동)이 간송 탄생 100돌을 맞아 소장품 가운데 고르고 고른 명품 100여 점으로 21일부터 6월 4일까지 특별전을 한다.
국보 12점과 보물 10점이 포함된 이번 전시는 그림, 도자기, 글씨, 불상 등 각 부문의 걸작을 망라하고 있어 한국미술사의 정수라 할 만 하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68호), 훈민정음 원본(국보70호), 기미명금동삼존불입상(국보72호),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람’ , 추사 김정희의 글씨 등 교과서에 실린 명품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간송미술관은 국립박물관에 맞먹는 최상의 컬렉션을 갖춘 보물창고 같은 곳이지만, 소장품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매년 봄과 가을 2주씩 여는 정기전 뿐이어서 해마다 이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간송미술관의 유물 정리와 연구를 맡고 있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의 전모를 보여주기 위해 최고를 골라 뽑았다” 고 소개했다. 그는 “간송이 수집한 이들 문화재가 없었다면 어떻게 겸재와 추사를 연구하고, 식민사관을 바로잡을 수 있었겠느냐”며 “이번 전시를 보면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기본 자료를 모아 준 사람이 간송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갑부의 아들로 태어난 간송은 서화 골동에 뛰어난 감식안을 지녔던 위창 오세창과 교유하면서 문화재 수집을 시작해 1938년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설립했다. 간송 사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71년 첫 전시 이후 이번이 70회 째 전시다. 오세창에게 사사한 간송의 글씨와 문인화 8점도 함께 나온다. 무료. (02)762-0442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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