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곡선의 삶 그리고 직선의 삶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곡선의 삶 그리고 직선의 삶

입력
2006.05.17 00:01
0 0

내가 사는 절의 길은 고개 길이다. 한 구비 한 구비 돌아 내려 갈 때 마다 바다가 숨었다 드러났다 한다. 돌아내려가는 맛이 있는 길이다. 사라졌다 나타나고 다시 사라졌다 나타나는 바다를 보게 되면 마치 길이 바다를 품고 있는 것만 같다.

그 길을 내려가며 나는 작은 먼지 하나가 온 세상을 다 품고 있다는 진리 하나를 깨닫는다. 크고 작음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곡선의 길이 내게 건넨 진리이기도 하다.

● 바다 보며 굽이굽이 도는 山寺 길

한 탐험가가 있었다. 그는 원주민과의 내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느 날 그는 원주민과 함께 바다를 거닐다 해변 저 끝까지 달리기를 하자고 제의한다. 원주민보다 나이도 많고 체력도 떨어지지만 그는 결코 지고 싶지는 않았다. 탐험가는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죽을 힘을 다해 달리던 탐험가는 마침내 결승점에 이르렀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원주민은 탐험가처럼 그리 열심히 뛰지 않았다.

원주민은 오히려 주변의 풍경을 즐기며 서서히 달려오고 있었다. 화가 난 탐험가는 원주민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원주민은 말했다. “난 그냥 달리고 있을 뿐입니다. 시합에는 관심이 없어요. 당신은 내게 그냥 달리기를 하자고 하지 않았나요. 좋은 풍경을 보며 달리는 것이 내게는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거든요.”

탐험가의 달리기는 직선이었고 원주민의 달리기는 곡선이었던 것이다. 탐험가는 일직선으로 앞만 보고 달렸지만 원주민은 바다와 바닷가 언덕의 꽃들을 다 돌며 달린 셈이다. 그의 눈에 가득한 꽃과 바다는 그의 달리기가 곡선이었음을 말해 준다. 탐험가는 이겼지만 승리의 기쁨도 얻지 못했고 아름다운 풍경 또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원주민은 패배의 실의도 없었고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가득 담을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을 경쟁과 승패로만 보는 문명인과 모든 것을 그냥 즐기려는 원주민의 의식의 대조가 돋보이는 이야기이다. 누가 더 지혜로운가. 그리고 누가 더 행복한가. 탐험가는 이기기 위해서 죽도록 달렸지만 원주민은 행복하기 위해서 그냥 달렸을 뿐이다. 탐험가는 이겼지만 화를 만났을 뿐이다.

● 앞만 보고 달리면 삶의 여유 없어

경쟁심은 언제나 직선의 삶을 강요한다. 그것은 표면적인 삶에 우리들을 머무르게 한다. 마음보다는 형상에 집착하게 하고 이해보다는 투쟁에 우리를 경도되게 한다. 조급하고 비정한 것이 직선의 삶의 내용이다. 그러나 곡선의 삶은 이해와 배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형상보다는 마음을 보게 한다. 그것에는 여유와 따뜻한 삶의 온기가 있다.

나는 길도 돌아가는 길을 좋아한다. 돌아가다 보면 마음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삶은 혼자 달리는 시합의 길이 아니다. 함께 가야만 할 아름다운 길이다. 저만치 숨었던 바다가 다시 눈앞에 나타난다. 바다를 품고 있는 이 길 위에서 나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성전ㆍ 남해 용문사 주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