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의 신문이란 신문들이 온통, 소위 중산층 이상을 타깃으로 한 지면 제작에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다. ‘위켄드’ 같은 영문 이름이나 혹은 ‘떠나자’ 어쩌구 하는 타이틀을 달고는, 중산층이라면 적어도 이런 브랜드의 옷은 입어야 되고 주말이면 저런 레스토랑에는 가야 되며 평소에 고상하게 요런 정도 라벨의 술을 들이켜고 틈나면 남국으로 해외여행도 떠나는 삶의 멋이 있어야 한다고 부추기는 별지들이었다.
한 신용카드회사의 광고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한 마디로 신나게 먹고 마시고 입고 놀아라는 것이 그런 지면에 실린 기사의 주요내용들이었는데, 그게 언제냐 하면 10년쯤 전이다. IMF사태 직전이었다. 그러다 한국의 중산층은 망했다.
일본의 중산층도 망한 모양이다. 일본에서 2005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는 ‘하류사회(下流社會)’라는 책이 며칠 전 국내 번역됐다. 마케팅 전문가인 이 책의 저자 미우라 아츠시는 2002~2005년 일본인들의 소비행동ㆍ생활패턴 등에 대한 실증적 조사결과들을 바탕으로 지금의 일본을 ‘하류사회’라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1950년대말부터의 고도 경제성장기 이후 9할 이상의 국민들이 자신을 중류계급으로 간주하던 소위 ‘1억 총 중류’의 일본사회가 1990년대 이후의 10년 불황을 거치면서 하류사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 격차로 인해 학력의 격차도 커지고, 그 결과 계층 격차가 고착화되면서 유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희망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일본의 잣대를 한국에 그냥 들이대기는 어렵다. 원체 신조어 만들기에 귀재로 소문난 일본인들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두 나라의 차이가 여전히 크다. 일본의 이극화(二極化)가 한국의 양극화와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책이 눈에 띄는 것은 ‘희망의 격차’라는 현상의 풀이 때문이다. 미우라 아츠시는 하류의 본질을 단지 ‘돈의 유무’가 아니라 ‘의욕의 유무’에서 찾고 있다.
그는 중류에서 하류로 떨어진 인간들을 마르크스처럼 생산수단 즉 소유의 여부에서가 아니라 의식의 측면에서 분류한다. “중류가 되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하류이다.” 누구든지 노력하면 중류 혹은 상류사회에의 진입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인간들이 대다수가 돼버린 사회, 소수의 엘리트가 국부를 창출하고 대다수 국민은 별 의식 없이 대충 먹고 놀며 사는 사회가 하류사회라는 이야기다.
한국은 어떤가. 나는, 당신은 하류일까 아닐까. 의식 혹은 희망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들은 하류 중의 하류로 쩔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욕을 갖고 삶과 맞닥뜨리기보다는 ‘부자 되기’라는 미명 하에 돈독이 오를 대로 올라 초등학생인 자식들에게 주식투자를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젊었을 때 빨리 돈을 번 다음 조기 은퇴해서 편하게 사는 게 꿈”이라는, 하류도 못되는 천민적 사고를 꿈이라고 말하게끔 만든 사회가 지금의 한국이다.
“~떠나라”던 기업들이 지금은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히포크라테스가 들으면 기가 찰 문구를 광고로 내건다. 비록 몰락한 재벌 회장의 말이지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포부가 요즘 젊은층에게는 “인생은 길고 돈 벌 시간은 짧다”는 금언으로 바뀌었단다. 이런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어른이 돼 득시글거릴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 의식의 하류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종오 피플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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