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TV 드라마에서 조폭은 안되는 것 없이 ‘다 되는’ 존재다. 그들은 SBS ‘야인시대’에서처럼 현대사의 영웅도 되고, KBS ‘인생이여 고마워요’에서처럼 병든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는 남편을 개과천선 시키는 가정문제 해결사 노릇도 한다.
이렇듯 조폭이 무소불위의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조폭에 대한 한국 사회 특유의 인식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 있지만, 일반인들은 그들의 실생활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깍두기’라는 말로 희화화할 정도로 친숙하다. 일반인에게 친숙하지만 실체를 알기는 힘드니 어떻게 묘사 해도 큰 문제가 없다.
KBS ‘위대한 유산’의 조폭은 유치원 교사가 되고, SBS ‘불량가족’의 조폭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아이의 기억을 되찾아준다. 그들은 폭력적인 범죄자인 현실 속 조폭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사건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가상의 캐릭터다.
오히려 드라마 속 조폭이 현실을 반영하는 건 그들이 조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과거 드라마에서 조폭은 ‘형님’을 위해서 살았고, 배신자는 곧 악역이었다. 그러나 요즘 조폭은 조직을 배신한다. ‘불량가족’의 달건(김명민)은 가족을 지키려고 보스와 싸우고, MBC ‘Dr.깽’의 달고(양동근)는 손을 씻기 위해 조직을 배신한다. 조직, 의리, 카리스마를 내세우던 조폭이 요즘엔 조직보다 가족과의 일상을 꿈꾸는 ‘어깨에 힘 뺀’ 남자가 된 것이다.
조직 역시 더 이상 의리를 챙기지 않는다. ‘불량가족’의 보스는 달건을 내쫓으며 빌려준 돈은 끝까지 갚으라고 하고, ‘위대한 유산’의 조폭은 기업처럼 조직원을 수익에 따라 평가한다. 이는 몸 바쳐 일한 직장에서 언제 명퇴 당할지 모르고, 조직 중심의 권위주의적인 남자보다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남자가 더 매력적으로 인식되는 요즘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드라마 속 조폭이 시대가 원하는 남성, 혹은 남성과 사회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 조폭이 더러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해도, 그것은 스토리를 위해 이용된 비현실적인 캐릭터에 담긴 설정의 일부일 뿐이다. KBS ‘굿바이 솔로’처럼 매일 죽음과 직면하는 조폭 생활에 괴로워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손을 잘라야 하는 비정한 현실을 담은 작품은 여전히 ‘마니아 드라마’에 속한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조폭은 단지 이야기를 편하게 끌고 가기 위한 ‘해결사’로만 동원된다.
객원기자 강명석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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