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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사이공의 첫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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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사이공의 첫날 밤

입력
2006.05.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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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첫날 밤, 선배는 술자리를 먼저 떠 호텔 객실로 돌아갔다고 한다. 난생 처음의 긴 여행에 지친 몸을 누이러 사이공의 밤거리를 지날 때, 아오자이 아가씨들도 아열대 가로수들도 무더운 공기 속에서 아른거리며 비틀걸음의 선배를 더 명정 상태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예가 대체 어디여? 인사동이여, 대학로여? 문득 휘둘러본 거리 위의 남빛 둥근 하늘에서는, 어쩌면 남쪽나라 십자성이 ‘난닝구’ 바람의 더벅머리 선배를 구경난 듯 내려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뒤에 룸메이트가 객실에 들어갔을 때, 선배는 목욕수건 한 장을 덮고 몸을 오그린 채 자고 있더란다. 그걸 보고 자기도 곤히 잠이 들었는데 그 새벽에 누가 몸을 흔들어 깨우더라는 것이다. 억지로 눈을 떠보니, 선배가 애절한 표정으로 그러나 생뚱맞게 내려다보며 그 이불 어디서 났냐고 묻더란다.

이불 가장자리를 바짝 당겨 매트 밑에 접어 넣은, 서양식으로 정돈한 침구를 처음 대한 우리 선배여. 이불을 끝내 못 찾고 결국 욕실에서 수건 한 장을 걷어와 덮고 잤던 것이다. 에어컨은 쌩쌩 돌고. 새벽에 하도 추워 잠이 깼는데 옆 침대 친구는, 어디서 났을까, 곱다랗게 이불을 덮고 있으니!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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