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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11>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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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11> 여론조사

입력
2006.05.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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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조사(opinion poll) : 사람들이 뭔가에 대해, 특히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다음에 얻은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처리하는 일.

영어 단어 poll은 그 자체로 ‘여론 조사’를 대신 뜻하기도 하며, 일차적으로는 투표, 선거, 투표수, 투표소 등의 의미를 갖는다. poll은 중세 영어에서 사람의 머리나 머리 윗부분을 뜻했다. 어원상 poll은 어떤 경우든 간에 사람 머릿수, 그러니까 통속적인 의미로 ‘쪽수’를 헤아리는 일인 것이다. poll의 발음은 편의상 우리말로 ‘포울’로 표기된다. 단, 여기서 ‘오우’는 ‘go’에서 처럼 이중 모음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여론 조사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결과 예측을 통해 당선자 선택에 직접 영향을 줄 뿐만이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정치인, 정당, 언론, 공무원들의 정치적 태도를 좌우하는 힘을 갖는다. 게다가 여론 조사는 특정 사안에 관해 개별 언론들이 논조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공표된 여론 조사 결과는 개인이나 집단이 어떠한 정치적 결정을 하거나 그 결정을 겉으로 표명하는 데 나름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선거 투표일 이전에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여론 조사 결과의 추이는 우리로 하여금 후보 및 정당에 대한 지지도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흔히 말하는 선거 판세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이다.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결정하거나 지지하는 데 있어서 이번 서울 지역의 지방 자치 선거에서만큼 여론 조사가 힘을 지녔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선거법상 공식 선거 운동에 돌입하면 여론 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다.

이재현: 안녕, 포울. 너와 직접 얘기하기는 처음이구나. 요즘 무척 바쁘지?

여론 조사(이하 포울): 으음, 낼모레면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니까 그 때 되면 좀 한가해 질 거야.

이재현: 선거법상 네가 공표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각 당과 언론사에서는 그래도 부지런히 너를 부려먹을텐데.

포울: 하기야 그렇지. 그런데 왜 날 직접 보자고 했니? 내 결과만 알면 되는 거 아니냐?

이재현: 어차피 널 의인화시키는 참에 나도 뭔가를 대신하려고….

포울: 뭘?

이재현: 으응, 그건 1997년부터 한국에서 중요한 정치적 선거나 투표 다음에 오게 되는 정치적 환멸을 대신하려고 해.

포울: 정치적 환멸?

이재현(이하 환멸):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리고 2004년의 총선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보려고 열심히 투표를 했지만 나중에 결과적으로 정치적 환멸만을 갖게 되었단다. 환멸이라고 하면 뭔가 문학 비평 용어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정치 상황을 분석할 때 정치학자들이 쓰는 말이기도 해.

포울: 최근에 한국에서 내가 인기 ‘짱’인 줄은 알았다만, 너까지 사람들을 사로잡을 줄을 몰랐네.

환멸: 하지만 큰 차이가 있지. 아무리 네가 확실하고도 큰 차이를 보여주어도 개표하기 전까지는 통상 사람들이 일말의 기대를 갖는데 반해서 나는 늘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지.

포울: 아무리 정치적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아도, 정치는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일이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정치에 관심을 가질텐데?

환멸: 그래도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사로잡혀 간다고 볼 수 있지. 나도 이런 내가 싫어.

포울: 환멸이 환멸을 싫어한다고? 첨 듣는 얘기다.

환멸: 세상에는 많은 내 동족이 있단다. 갖가지 허영의 환멸, 사랑의 환멸, 지적 환멸, 종교적 환멸 등. 이 모든 게 위대한 문학 작품들의 소재가 되곤 했지. 문학이론가 루카치는 근대 소설을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면서 심지어 ‘환멸 소설’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기도 했단다. 환멸 소설은 일종의 낭만주의의 결과인데, 소설 주인공의 영혼, 즉 내면 세계가 바깥 현실과 불일치해서 생긴다는 거야. 주인공이 자기 내면에 빠진 탓에 외부 사회 현실에서 적적한 자기 과제를 찾지 못하거나 만족을 얻지 못한다는 거지.

포울: 꿈이나 이상이 깨어지면 네가 곧바로 찾아온다는 얘기를 하는 거냐?

환멸: 응, 맞아. 예컨대 사람들이 한참 열렬한 사랑의 감정에 푹 빠져 있다가 갑자기 거기서 깨어나게 되면 지독한 나를 맛보게 되는 거지. 특히, 상대방이 자기를 배신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말이야. 그래서 달콤했던 사랑의 말들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나는 틀림없이 찾아가서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는 하지.

포울: 원래 정치란 다 그런 거야. 노무현 대통령도 올 초에 정치를 그렇게 정의했잖아. 직업적인 정치인들이 거짓말하는 것인 줄 서로 잘 알면서 싸우는 척 하는 게 정치라고.

환멸: 하지만 1997년이래 ‘선거 혁명’이라는 말이 쓰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서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었단다.

포울: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헛된 기대와는 달리, 나는 냉정하게 현실을 보여준단다.

환멸: 으잉? 네가 현실을 냉정히 보여준다고? ‘출구 조사’의 경우 지난 세 번의 총선에서 엉터리임이 판명났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포울: 내 결과가 부정확하게 되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샘플을 뽑는데 잘못이 있거나 사람들이 응답을 하지 않거나 응답할 때 진심을 밝히지 않거나 하는 경우에 종종 그렇게 되기는 하지만 내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통계학적 이론에 잘못이 있는 건 아니야.

환멸: 네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다, 어쨌든 간에 지난 15대, 16대, 17대 총선의 출구 조사가 잘못 되어 방송사들이 사과를 했는데….

포울: 지난 탄핵 정국 때에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표심 노출을 꺼린 거야. 반대로 젊은 층들은 자기 의견을 밝히는 데 적극적이었던 거고. 그리고 한국 선거법은 출구 조사에 제한이 심해. 미국의 경우 투표소부터 거리가 한국보다도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 거절률이 높단다. 한국은 투표소에서부터 거리가 먼데다가 조사원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통계학적으로 중요한 무작위 추출을 해낼 수 없는 거란다.

환멸: 여전히 뭔 소린 줄 알 수가 없구나.

포울: 핵심만을 쉽게 말하자면, 사회 분위기가 자신의 정치 성향과 다를 때 사람들은 의견 표명을 안 하거나 속마음과 다르게 한다는 게 포인트야. 1990년대 영국에서는 ‘수줍어하는 보수당 지지자 요인(Shy Tory Factor)’이라고 하는 게 있었어. 영국 보수당이 당시에 욕을 많이 먹고 있어서 여론 조사 때는 보수당이 선거에서 지는 걸로 예측되었지만 결과는 보수당의 승리였지.

환멸: 하지만 이번 서울 시장 선거는 다르던데.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멸을 좌우 양쪽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니까. 만약 내가 후보로 나선다면 당선이 확실할 정도지.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노무현 정권을 정치적으로 심판하려고 벼르고 있으니까 말이야.

포울: ㅎㅎㅎ…. 그건 그렇고 네가 사람들은 사로잡은 결과로 이번 선거에서 주된 현상으로 나타난 건 뭐냐?

환멸: 우선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는 게 있었지. 유력한 쪽에 사람들이 편승하는 걸 말해. 이번 선거에는 오세훈 후보가 여론 조사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지지를 얻었는데 바로 그런 현상을 말하는 거야. 그 반대도 있을 수 있겠지. 언더독(underdog) 효과 말야. 경기나 선거에서 질 거로 예상되는 개인이나 팀에게 동정표를 던지는 거야. 지금 판세라면 강금실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걸 말해.

포울: 그건 그렇고, 한국 선거에서는 사표 방지 심리에서 행해지는 전략적 투표가 많았던 걸로 나는 알고 있어. 민주노동당 후보가 선거에서 표를 많이 얻지 못한 게 전략적 투표의 결과였지. 전략적 투표란 투표를 정부 선택의 현실적인 행위로 간주하는 점에서 자신의 본래 이념에 따라서 투표하는 게 아니라 비록 덜 선호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념에 가까운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거야.

환멸: 대통령 선거나 총선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뽑는 선거니까….

포울: 그거야 사람들이 이번 선거의 의의를 어떻게 보는가에 달린 거겠지. 선거란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거니까. 그래서 재미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만약 네가 유권자라면 넌 누구 찍을 거니?

환멸: 당연히 집에서 쉬어야지. 선거 끝나면 내가 ‘졸라’ 바빠질 테니까. 휴식하면서 체력을 비축해야지.

포울: 너는 마치 결과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말하는구나. 하지만 이런 것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렴. 승리가 예견되는 후보 지지자들이 투표하지 않아서 다른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도 있단다. 이걸 ‘부메랑 효과’라고 해.

환멸: 어쨌든, 선거 전 네 결과하고 실제 투표 결과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보는 건 재미있겠지. 그럼 수고하렴….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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