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에서 ‘토탈 이클립스’를 빌려 봐야겠다. 랭보에 관한 영화다. 랭보의 생애가 잘 알려져 있어 내용도 빤할 것 같았고, 랭보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표정이나 연기도 빤히 떠올라 예전엔 굳이 볼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유명한 배우가 제게 너무 적역으로 보이는 인물을 연기하는 건 기대감과 호기심을 반감시킨다. 그런데 갑자기 ‘토탈 이클립스’가 보고 싶어졌다. 제목 때문이다.
토탈 이클립스는 개기 일식과 개기 월식을 다 가리키는 말이다. 내가 보고 싶은 건 개기 일식이다. 영화 ‘토탈 이클립스’가 보여주려는 것도 개기 일식 아닐까? 랭보의 천재가 빛을 발해 다른 시인들의 재능이 빛 바랬다는 얘기일 것도 같고, 새파랗게 젊은 시인이 눈부신 시를 쏟아내다 일식처럼 순식간 모습을 감췄다는 얘기일 것도 같다.
시인 박영근이 고인이 됐다. 박영근은 나와 동갑이다. 이미 정오를 훌쩍 넘긴, 그러나 아직 그림자가 진할 시간. 한 번도 그와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가까운 공간에 살았다. 그는 불우했고, 시인밖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모두 거짓이었다 하고/ 봄은 달아나버렸네’(다네다 산토카). 남은 봄날이 짧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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