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에 의해 재구성된 ‘일본 민족’은 자신은 우월한 천손 민족이자 본토의 원(原)민족이고, 중국이나 한국 등 동아시아인은 계속 외부로 존재하게 하는 이중 동심원적 의식이었다.
(2차 대전의 패배로) 1945년 일본 제국이 좌절했지만 이 이중화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제 다시 대국화한 일본은 이 이중성을 변용, 재생시키고 있다. 교과서 문제에 있어 이른바 ‘역사 다시 보기’란 바로 이러한 내부로서의 일본의 집요한 재생의 요구이다.”
패전 후에도 내셔널리즘 잔존… 대국화 바람타고 天孫사상 재생
신사참배는 침략의 역사 부인 행위… 반성과 복원만이 동아시아 화합의 길
일본의 대표적 비판 사상가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ㆍ73) 오사카대 명예 교수는 15일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윤덕홍) ‘석학 초청 강좌’에서 ‘일본 내셔널리즘의 비판적 독해’를 통해 일본의 2차 세계 대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에 생긴 ‘제국 일본’의 마인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며 ‘제국주의적 연속성’을 비판했다. 이는 일본 학계와 정계의 주류 의견, 즉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일본이 제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했다는 ‘단절론’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그는 ‘일본 민족’이란 용어는 일본 쇼와(昭化) 4년(1929년)에 이르러 집중적으로 등장했으며 만주사변(1931년) - 중일전쟁(1937년) - 태평양전쟁(1941년)의 이른바 ‘15년 전쟁’ 기간 중 일본은 “외부를 포섭하면서도 계속 외부를 설정하는 ‘본토 대 외지’란 이중화를 체험했으며 이 이중성은 지금도 변용, 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인 스스로 진정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으면 또 다른 위험한 길을 반복해 걸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포스트 구조주의자’를 자처하는 고야스 교수는 일본사상사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번역 소개된 ‘야스쿠니의 일본, 일본의 야스쿠니’(산해 발행)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공공연히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것은 일본 국민과 아시아 이웃에 대한 도발이자 시대 착오로 가득찬 기만 행위, 역사를 성찰하지 않은 오만이자 수치를 모르는 짓거리”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고야스 교수는 16일 ‘동아시아와 한자’, 17일 ‘한일 관계의 역사와 현재’, 18일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등 강연을 계속한다. 다음은 16~18일자 강연문의 요지.
역사의 일국화(一國化)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동아시아에 큰 피해를 준 일본 제국 전쟁의 역사를 일본 한나라의 역사로 부당하게 환원하는 것이다. 전쟁을 역사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자국의 주권행사 문제로 치환한다. 이 같은 내셔널리즘의 논리가 역사 인식에 우선함으로써 동아시아에 커다란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전쟁의 기억을 가해자 중심으로 일국화하겠다는 것은 ‘역사의 본질적 왜곡이자 폭력적 반윤리적 고쳐 쓰기’이며 ‘역사를 일본 제국의 역사와 동일화 하는 것’이다. 야스쿠니에는 일반 일본인의 희생과 무수한 아시아 희생이 배제되어 있다. 독도 문제도 독도를 빼앗은 것은 기억 속에 없이 1905년 러일전쟁 승전만 기억하는 역사 일국화의 문제다.
바람직한 한일ㆍ동아시아 관계 근대 일본의 성립 과정은 일본의 역사 속에 남아 있는 ‘가라’ 즉 ‘한’(韓과 漢)의 흔적을 총체적으로 지우는 것이었다. 7세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이후 시작된 이런 전통으로 일본인의 눈은 ‘한’을 볼 수 없게 됐다. 따라서 한류는 역사 속에 소거됐던 ‘한’이 갑자기 나타난 데 대한 일본인의 놀라움의 작용이다.
일본이 내세웠던 ‘동아’ ‘대동아’는 일본 제국이 구성하는 정치적 개념에 불과한 만큼, 동아시아 공동체는 ‘대동아’의 죽음 위에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의 공유체’인 한ㆍ중ㆍ일이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 때 지역 협력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시민간 역사 공유다. ‘한자 문화 공동체’로서의 역사 복원으로 공통점을 찾고, 그 기반 위에 진정한 연대를 싹 틔워야 한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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