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가 더 즐거웠습니다.”
스승의 날인 15일. 고마워하는 제자나 더 기뻐하는 스승이나 머리가 희끗희끗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실에서의 자리만 아니라면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교실은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시립은편노인종합복지관 내 검정고시 준비반. 교단에는 이영욱(68) 선생님을 비롯한 5분의 퇴직 교사들이 섰다. 학생들은 집안 사정에 눌려, 사회적 인식에 치여 배움의 기회를 놓친 할머니 10명. 평균 연령 60대로 선생님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 교실에 얼마 전 경사가 생겼다. “10명의 제자 중 2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어요. 아이들이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즐겁네요.” 주인공은 이달 초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한 박정숙(60) 할머니와 고입검정고시에 붙은 정두연(68) 할머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수업을 각각 3년, 5년 간 이수한 끝에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이 선생님은 제자들이 못내 자랑스러운 듯 얘기를 풀어놓는다. “사실, 저 혼자 가르친 건 아니에요. 다른 선생님들이 워낙 잘하시고, 또 제자들이 잘 따라와 준 거죠.”
정 할머니도 지지 않는다. “몸도 그렇고, 머리도 그렇고 뜻대로 되는 게 있기나 한 나이인가요. 그저 워낙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으니 뒤늦게나마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 거죠.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이 선생님은 7년 전 서울 등서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났다가 다시 노인들을 대상으로 국사를 가르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수업을 위해 경기 파주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지만 힘든지 모르겠어요. 뜻이 있는 한 가르치는 데에 끝은 있을 수 없습니다.”
3년 전부터 노인종합복지관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윤갑진(71) 선생님도 다시 가르치게 된 게 여간 고맙지 않다. “퇴직한 이후 등산도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며 여가생활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교단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어요. 요즘 수업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까지 다시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축하와 존경을 받아야 할 스승의 날에 선생님들이 도리어 제자들에게 감사하는 이유다.
이 선생님은 퇴직 평교사 중심의 봉사 단체인 한국퇴직교원협의회의 2000년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30년 넘은 교육 노하우를 퇴직과 동시에 썩히는 것이 아까워 3,000여명의 선생님들을 회원으로 등록시켰다. 하지만 재정 악화 등의 이유로 최근 협의회 활동이 약해진 점이 맘에 걸린다.
서울시 관계자는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적인 퇴직 교사는 많지만 이들의 지식과 경험을 살릴 만한 기회가 부족한 편”이라며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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