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논제 분석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世界)는 인간과 사회, 자연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명이 모이면 사회가 되기에, 인간과 사회는 같은 부류로 볼 수도 있다. 이러면 세계는 둘로 구분된다. 세계에 대한 학문이 인문․사회․자연과학 또는 문(文)․이과(理科)로 구분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3자는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긴밀한 ‘관계(關係)’를 가진다. 예컨대 우리는 매시간 자연과 사회, 타인과 ‘관계’를 가진다. 봄바람이 불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출근을 하며, 친구를 만난다. 거울을 보고 다짐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과도 관계를 가진다.
이처럼 인간이 외부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맺는 ‘관계’는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관점에서는, 인간을 ‘관계 그 자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관계’는 모든 존재(存在)의 특징이고, 인간도 관계 속에서만 살 수 있다. (왕따처럼 관계가 파탄나면 고통스럽다)
서강대학교가 (바람직한) ‘관계와 자아정체성’을 논제로 채택한 것은 이런 연유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존재론적 가치와 형이상학적 물음은 여전히 필요하다. 논제는 신(神)은 빠졌지만, 예수회 대학교의 분위기를 잘 반영한다.
나. 제시문 분석
제시문 [가]는 ‘관계’를 검토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글이다. 인간이란 (세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고, 양자 사이의 관계이다. 관계는 부정적 통일체(변증법)로서 제삼자이다.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는 자기를 스스로 정립한 것이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정립된 것이다. 자기 자신과, 동시에 타자와 관계하는 이러한 복잡한 관계가 인간이다.
[나]는 두 종류의 관계 즉 ‘나-너’의 ‘인격적 관계’와 ‘나-그것’의 ‘사물적 관계’(도구적 유용성)를 설명한다. 관계가 없는 ‘나’ 혼자는 없다. (내가) 인격적으로 ‘너’를 말할 때, 인간(정신)은 세계와 자기를 구원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물론 ‘그것(대상화된 事物)’의 세계는 자연과학적 질서인 인과율이 지배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의 세계에 속박되어 있지 않고 ‘관계’로 들어온다. ‘나-너’ 관계는 서로 자유로우며 상호관계이다. (사람은) 관계와 너의 실존(현존)을 이해하고서 결단한다. 관계의 목적은 관계 자체이며, 숨결을 느끼는 ‘너’와의 접촉이다.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소유가 아닌, 존재에 관여한다. 관여(관계)는 직접 ‘너’와 접촉하며 그럴수록 완전하다.
제시문 [다], [라]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다]는 디지털 사회의 변화를 설명한다. [라]는 세계 최초의 안면이식 수술을 보도한다. 수술은 환자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다른 얼굴 때문에 본인, 친지들에게 충격을 줄 수도 있다.
제시문 [마]는 이청준의 글이다. 새 원장이 수용소를 좋게 바꾸었지만 환자들은 계속 탈출한다. 탈출은 섬의 낙원에 대한 노골적인 야유이자 부정이다. 마침내 원장은 깨닫는다.
다. 답안 작성
서강대 논술은 짧은 두 문제이다. 첫째는 [가], [나]의 논지를 요약한 후, 이를 구체적 논거로 활용하여 [다], [라]가 시사하는 문제점 중 ‘공통점’을 중심으로 논술한다. 둘째는 [가], [나]의 논거를 구체적으로 활용하여, 원장이 ‘깨달은 핵심’ 내용을 추론한다.
답안 1 : 글 [다]는, 전자우편도 언급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우리가 개라는 걸(정체를) 아무도 모를 거야” “나는 여러 개의 이름” 등 정체성과 관련 있다. [라]도 정체성이다. 따라서 두 글의 공통 문제점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가지는 ‘정체성 혼란(위기)’이다.
이 논제에 대하여 [가], [나]를 논거로 활용하면 정체성은 자신 또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격적인 ‘나-너’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계가 중요하다.
답안 2 : [가]처럼 관계는 중요하다. [나]처럼 원장-환자들의 관계는 인격적인 ‘나-너’ 즉 진정한 만남이어야 한다. 대상화되고 사물화된 ‘나-그것’ 이면 안 된다. 이것이 원장이 깨친 핵심이다.
장희병/장희병영어논술연구소 stmary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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