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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김동원씨 '수도자 같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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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김동원씨 '수도자 같은 배우'

입력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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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차남 진환씨로부터 김동원 씨의 서거 소식을 접한 원로 연극평론가 유민영씨는 “오래 동안 자리보전을 하고 있어 마음으로 준비는 했지만 막상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며 슬픔에 갈음했다. 유 씨는 “연극도 인생도 모범생인 고인을 두고 나는 ‘수도자 같은 배우’라고 부르기도 했다”며 고인의 삶을 압축했다.

13일 유명을 달리 한 한국 연극계의 1세대 배우 김동원 씨는 무대에서나 가정에서나 ‘영원한 햄릿’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영국 신사’였다. 유 씨는 “연극과 인생 모두에서 모범생인데다 미남이라, 여배우들이 접근했지만 놀랍게도 스캔들은 전무했다”고 전했다. 유 씨는 “고인은 예술과 인생 모두에서 정성을 다한, 철저한 삶을 살았다”며 ‘뇌우’ ‘햄릿’ ‘메피스토펠레스’ 등 세 작품을 최대의 명연작으로 꼽았다.

13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대표는 “술 담배도 안 하는 단정하고 완벽한 영국 신사”로 고인의 단아한 생을 압축했다. 임 씨는 “고인은 옷도 잘 차려입은 멋쟁이 베스트 드레서였고, 후배들에게도 자상하게 잘 대해준 신사였다”고 회고했다. 숨진 직후 유족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임씨는 고인과 동갑내기인 원로 연출가 이원경, 영화감독 김수용 씨 등과 첫 날 빈소를 지킨 데 이어 이튿날인 14일에도 자리를 지키며 고인의 삶과 예술을 회고했다.

연극이 침체에 빠지고 영화가 흥성하던 1950~60년대, 무려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탁류에 휩쓸리지 않는 고고함을 유지했던 고인의 삶은 조문객들 사이에서 최대의 화제였다. 일체의 잡기와는 거리를 둔 고인을 두고 ‘교장이나 사장 같은 배우’라는 말이 별명처럼 따라다녔다. 70년대 이후 영화나 TV에서 거금을 제의하며 출연해 달라는 유혹도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을 만큼 한번도 굽힘이 없었던 고인에게는 ‘수도자’라는 말까지 따랐다. 광고 한번 안 나갔던 일도 요즘 세태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술을 입에 대지 않던 고인은 “하하” 잘 웃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다른 사람을 입에 잘 올리지 않던 그는 고향인 개성 사람의 깔끔한 기질이 강했다고 지인들은 회고한다. 구두 공장을 하던 그의 부친은 그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때 전란을 피해 남하, 아들에게 국내 최초의 햄릿이 될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피난중이던 1951년 대구 키네마 극장에서다.

고인은 세 아들이 모두 자기 분야에서 견실한 성공을 거둬, “자식 농사 잘 지은” 배우로도 지인들의 입에 즐겨 오른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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