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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교문 활짝… "사제의 情도 활짝 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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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교문 활짝… "사제의 情도 활짝 피죠"

입력
2006.05.1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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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무늬만 남다니 말이 되나요.”

경기 의왕시 명지외고는 15일 오전 교사 대신 학생이 직접 교단에 선다. 미리 자원한 학생 1명이 총 4교시 중 1교시를 맡아 해당 과목을 가르친다. 선생님이 한 시간 수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몸소 느껴보기 위해서다. 장차 교사가 희망인 학생들이 선생님을 미리 체험하는 수업을 신청했다.

3학년 김태훈(영어과) 학생도 그 중 하나이다. 당일 4교시 독서 수업을 자원했다. 가르칠 주제는 ‘비문학의 독해 요령’. 원래 국어 선생님이 맡은 진도를 학생이 이어가는 식이다. 태훈 군은 50분 수업 하나를 진행하기 위해 1주 전부터 교무실을 들락날락하며 선생님의 지도도 받고 친구들 주문에도 귀 기울였다.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졸립게만 하지 말래요.” 실제 연습 삼아 앞에 섰다가, 설명해야 할 부분이 입가에 계속 맴돌아 땀깨나 흘렸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저희 앞에서 어찌나 청산유수로 설명도 잘 하시는지….” 가르치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오후엔 학생ㆍ교사 모두가 강당에 모인다. 학생들의 ‘선생님 따라잡기’ 행사는 이 학교 스승의 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이다. 7~8명의 학생이 번갈아 가며 큰 장막 뒤에서 몇몇 선생님을 흉내내 성대모사를 하면 객석의 학생들이 알아 맞히는 식이다. 총학생회장 이창희(영어과 3년) 학생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수학 선생님이나 억양이 독특한 중국어 선생님이 단연 인기”라고 말했다.

선생님들의 제자 사랑 표현도 이에 못지 않은 것이라고 한 교사는 귀띔했다. 교내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사가 직접 제자의 캐릭터를 소화해 열연하는 역할극, 세족식을 통해 제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하곤 한다. 15일엔 교사들이 직접 “소외된 학생을 먼저 배려하겠다” “늘 연구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겠다” “학생 하나하나의 장점을 발견해 칭찬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교사 선언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마무리는 역시 서로의 땀내를 맡으며 어울릴 수 있는 운동이 제격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스승의 날 행사는 교사 대 학생 간의 축구 시합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예년 같지 않은 스승의 날이다. 이미 전국 상당 수의 초ㆍ중ㆍ고등학교가 ‘15일 휴업’을 선언했다. 선물ㆍ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아 오히려 교권이 실추된다는 이유에서다. 대구처럼 초등학교 204곳 모두 스승의 날에 학교 문을 열지 않는 지역도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전국 262개 학교를 표본 조사한 결과, 72.1%가 스승의 날에 자율 휴업을 실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명지외고를 포함 스승의 날 등교하는 학생들은 ‘차라리 조용히 치를 망정, 뜻 있는 날에 스승에 대한 최소한의 예(禮)는 차려야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역시 “선생님의 은덕과 존경심을 기리기 위해 만든 스승의 날을 촌지 때문에 자율 휴업일로 한다는 건 이 날이 촌지를 받는 날임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얘기냐”며 일부 학교의 휴무 결정에 유감을 표시했다.

날을 맞춰 찾아오는 졸업생 제자들 생각에 결국 휴무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학교도 있다. 개교 20주년을 맞은 서울 운현초등학교는 지금도 전교생이 180여명에 불과해 유달리 사제의 정이 깊다. 김명희 교감은 “많은 학교가 ‘부담스러워 쉰다’고 하는데, 우리 마저 그 날 쉬게 되면 그 사실을 모르고 학교를 찾은 제자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겠냐”며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학교들 중엔 “올해는 그럭저럭 치르겠지만 내년은 장담할 수 없다”는 곳이 적지 않다. 서울 언남고와 송파공고는 올해 스승의 날도 예년처럼 우수 교사 표창, 카네이션 달아주기, 감사 편지 쓰기, 옛 스승 찾아 뵙기 등 행사를 갖기로 했다. 언남고 강선옥 교감은 “내년은 어찌될지 모르겠다”며 이미 학교 안에서 여전히 많은 교사들이 “오해 받을 바에 행사를 갖지 말자”는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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