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월드컵 최종엔트리를 발표한 11일 그랜드힐튼호텔 기자회견장. 단상에 앉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최종 엔트리 23명의 명단이 든 종이 한 장을 꺼내 들며 태극전사 23명의 이름을 직접 호명했다. 긴장감이 넘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넘버 원, 이~운재”라는 이름이 맨 먼저 불렸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골키퍼 이운재(33ㆍ수원)가 3번째로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되는 순간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최고의 골키퍼를 뽑는 야신상 후보 그리고 아드보카트호 부동의 골키퍼. 하지만 그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8년간 수많은 시련과 싸워 이겨야 했다.
청주상고 1학년 때 골키퍼로 전향해 3년 만에 92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를 꿰차고 94년 미국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94년 미국월드컵 독일전에서는 후반 교체 출전해 월드컵 데뷔의 영광도 안았다. 20대 초반 유망주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96년 초 폐결핵이라는 암초에 부딪히며 그의 꿈은 하나하나 허물어지고 말았다. 96년 눈앞에 다가온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명단에 오르지 못했고, 2년간 운동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선배 김병지가 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안방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앞두고도 그는 언제나 김병지의 백업으로 그라운드를 밟는데 그쳤다. 기회가 찾아온 것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을 맡으면서부터. 이운재는 초반 열세를 딛고 안정감 있는 플레이로 히딩크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넘지 못 할 벽처럼 느껴졌던 김병지를 밀어내고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시련을 벗어난 그의 몸놀림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8강전이었던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 호아 킨의 골을 막아내며 4강 신화의 마침표를 찍은 주인공이 되는 영광까지 안았다. 월드컵 본선 7경기에서 단 6골만 내주는 철벽방어로 최고 골키퍼의 영예인 야신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비록 독일의 올리버 칸에게 상을 내주기는 했지만 이운재의 위상은 세계 정상급으로 자리 매김됐다.
독일월드컵에서는 주전은 물론 대표팀 주장까지 맡아 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엔트리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세계최고를 향해 뛰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이번 월드컵은 마지막인 만큼 특별하다. 다음달 19일 16강을 가늠하는 스위전에서 승리를 지켜낸다면 두 대회 연속 16강 진출과 센츄리클럽(A매치 100회 출전) 가입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기 때문이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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