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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한국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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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한국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입력
2006.05.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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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작은 신화의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중 첫 시리즈인 ‘맥베스 쇼’가 지난 일요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이번 주말에는 대학로에 있는 아르코 대극장에서 극단 76이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리어왕’(기국서 연출ㆍ사진)을 올린다.

10주년을 단위로 하는 극단의 창단 기념 공연은 낯익은 행사다. 이미 극단 미추가 ‘주공행장’으로 기념식을 치룬 것을 비롯해 연희단거리패(20년), 극단 뿌리(30년), 극단 자유(40년)가 무대를 기다린다. 한국 연극에서 이 세월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기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여년 전에 나온 책 ‘연극, 우리들의 생존’이 생각나는 것은 또 왜 인가?

한국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리어왕’ 공연에 내건 글귀가 그 뜻을 밝혀준다. ‘찬란한 비극, 오만한 패배’를 예약해 놓는 일이다.

이삼십 년 해봐야 변변한 연습실 마련하기가 어렵고, 단원들의 최저 생계비도 책임질 수 없으며, 전용 극장은 도무지 꿈도 못 꾼다. 설령 지난 시절 전용 극장을 가졌던 극단일지라도 천정부지로 뛰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극단 대표들은 집을 줄이든지 팔았다. 지상의 방 한 칸보다는 세워졌다 부수는 극장 안 ‘일루젼’에 삶의 의미를 걸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유에서 다시 무로 비우는 연극 작업에도 연극인들은 절대 빈곤과 허기에 굴하지 않고 자부심과 들림, 관객을 향한 섬김으로 견뎌왔던 것이다.

극단들은 지금 신자유주의 환금성이라는 유일의 가치, 문화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세계화 시대의 강박적 요구 앞에 과로를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실천을 모색했고, 모국어의 오염에 대항해 싸워 왔으며, 특정 이데올로기의 공룡이 내뿜는 ‘검열’의 불길에도 불굴의 정신으로 대항해 왔다. 가장 허약한 병사가 인문학과 예술이라는 마라톤 벌판을 달려 인간의 존엄성과 승리를 알려 온 형국이다.

지금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는 아웃사이더 정신을 잃지 않고, 제복을 거부한 채 사회와 제도의 억압과 모욕 앞에 저항하라고 부추겼던 극단 76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기념하고 있다. 대표작 ‘관객 모독’의 찬란한 기억을 뒤로 한 채 청년 문화의 늙지 않는 좌장, 기국서는 새로운 ‘리어왕’을 내놓았다. 노추에 대한 부정, 광기에 대한 옹호와 연민으로서.

삼십 년 내내 관객을 향해 내밀어 온 손길을, 미켈란젤로 천정화 속의 신처럼 연극의 신은 팔 뻗어 잡아주시기를. 관객은 그의 연극이 오랜 세월동안 섬겨 온 유일무이한 신일 것이다.

극작ㆍ연극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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