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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침대맡 책 읽어주기는 '공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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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침대맡 책 읽어주기는 '공부'가 아니다

입력
2006.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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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을 먹는데 동아가 난데없이 묻는다. “엄마, 마고할미가 만든 성이 아직도 거제도에 남아 있어?” 식탁유리 밑에 깔아둔 우리나라 지도에서 ‘거제도’가 문득 눈에 들어왔나 보다. “그렇겠지.”맞장구 치는데, 아빠가 끼어든다. “무슨 성? 거제도 어디에 있는 건데?”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썰렁~’이겠지.

야단을 맞던 아이가 “내 엉덩이도 집을 나가려 해”하며 운다던가, ‘라면기차’를 타겠다고 우길 때, 드디어 나도 내 방이 생겼다며 뜀뛰다가 “만약에 발가락 하나라도 넘어왔다간, 후회하게 될걸요”하고 엄포를 놓을 때, 한바탕 엄마랑 싸우다가 “나도 프란치스카 프라게차익헨 요정한테 갈 거야.

마법설탕 달라고 할 거야”하고는 엉엉 울어버릴 때, 당근을 앞에 놓고 “난 아무래도 ‘오렌지뽕가지뽕’은 못 먹겠어” 할 때…, 생뚱맞은 표정으로 무시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좋은 방법이 우리 집 침대 머리맡에 있다. 바로 잠자리에 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책 읽어주는’ 순간이 엄마에게는 ‘책 읽는’ 시간이면서 아이와 맞장구치고 공감할 ‘꺼리’를 축적하는 자리다.

그런데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다. 책을 읽어주면서, 그만 숨겨놓았던 조급증을 드러내곤 한다. 책을 앞에 두고는 뭔가 얻어야 한다는 그 강박관념이 다시 도져, 책 읽는 것 자체가 충분한 기쁨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목적’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다. 글씨 ‘완전정복’을 위해 그림책의 글자를 한 글자씩 짚어 읽어준다. EQ를 높이겠다고 그림을 하나하나 벗겨가며 설명하거나 느낌을 강요한다. “슬프지, 그렇지?” 논리력을 주겠다고 질문을 던진다. “어땠어?” “뭘 느꼈니?”

그러나 목적이 크면 기대가 크고 실망도 크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고 나면 어떤 ‘답’을 확인하려 든다는 경계심에 아이는 침대 머리맡에서조차 긴장해야 한다. 책을 또 다른 잔소리꾼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뒷날 우리 아이가 책과 멀어진 이유가 될지 모른다.

엄마는 어떨까? 푸념하게 된다. “나는 목이 아프고 피곤해도 책을 읽어주었는데, 너는 어째….” 책 읽어주기가 더 이상 기쁘지 않은 순간, 거기서 끝이다. 읽어주지 않음만 못한 결과를 빚게 된다.

침대 머리맡에서는 책 읽어주는 엄마로만 만족하자. 잠자리에서 엄마가 읽어준 책은 거대한 서사시가 되어 아이의 상상 속에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책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는 노래이며, 엄마가 내쉰 숨소리는 평생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행복한 독서를 만드는.

어린이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관장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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