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 근처에 조계사가 있어서 오가는 길에 자주 들르곤 한다. 요즘엔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하는 연등들이 절 마당에 가득하다. 수백개인지 수천개인지 헤아리기 힘든 수많은 연등에 모두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이름마다 담긴 누군가의 기원이 따듯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하늘이 온통 연등으로 뒤덮인 절 마당을 나는 몇바퀴나 돌았다. 그러면서 며칠 전에 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날 나는 선배들과 점심을 먹으며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보다 십여년 위인 그 선배들의 대화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바람이나 강물처럼 자유롭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늘 신선하다.
● 이름모를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
그날의 화제는 돌아가신 분들을 어떻게 추모하고 사랑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선배들은 각자 다른 종교를 믿지만 불탄일 무렵이어서 불교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 중 한 이야기가 특히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된다. 조부모 부모 형제 자녀 배우자 친구 등을 이미 저 세상으로 보낸 사람들도 많다. 항상 옆에 있던 사람, 전화를 걸면 얘기할 수 있고 찾아가면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영원한 이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루에 몇번씩 그를 부르고 몸부림치며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고, 안으로 슬픔을 삭이며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격렬한 슬픔도 세월이 가면 삭혀진다. 우리가 더 이상 울지 않으면 그들은 잊혀졌음을 서러워할까.
불교의 49재는 산자와 죽은자를 함께 치유하는 의식이다. 죽은자의 영가(영혼)는 49일 동안 생과 사의 중간 단계인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다가 다음 생을 얻는다고 한다. 그 기간에 영가가 두려워하거나 외로워하지 않고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도록 가족들은 불공을 드린다. 7일마다 7번의 불공을 드리는 동안 영가도 유족도 이별의 슬픔을 달래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49재 후에 다음 생을 얻어 다른 사람이 된 영혼, 나의 아버지 또는 나의 아들이었으나 지금은 다른 생을 살고 있을 영혼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을 떠나보내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로 놓지 말아야 할까요?”라고 나는 지혜로운 선배들에게 물었다. 한 선배가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생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영혼은 영원히 이 우주 안에 존재하겠지요. 오늘 우리의 영혼은 수많은 전생과 이어져있고 또 미래와도 이어져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세상 떠난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하면 그 마음이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전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 등불이 되기도 하고, 숨막혀 할 때 서늘한 바람이 되기도 하겠지요.”
● 생사초월, 우릴 연결시켜주는 사랑
그 말이 너무 멋있어서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오늘의 나에게도 수많은 기도의 도움이 있었음을 나는 확신했다. 지금 이 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사랑뿐 아니라 전생에 좋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보내주는 사랑까지 나에게 힘이 되고 있다는 깨달음!
연등은 항상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준다. 조계사의 연등 아래서 나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시대가 아니었지만, 지금 나는 그 말을 하고 싶다. “많이 많이 사랑해요. 많이 많이 그리워요. 지금 어디 계시든 좋은 일 많이 많이 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빌어요”라고 나는 요즘 어린이들처럼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저마다 간절한 기원을 담고 주렁주렁 매달린 연등 아래서 나는 우리 모두가 연등처럼 이어진 존재라고 느낀다. 수많은 생을 통해 이어진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가톨릭 신자인데 지금 연등아래서 아름다운, 감동적인 꿈을 꾸고 있다.
본사이사 장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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