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소련 및 동구권의 인권문제에 적용됐던 ‘헬싱키 프로세스’가 미국의 최근 대북정책에 재연되고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요즈음 미국의 대북정책 현황 및 변화의 설명에는 ‘헬싱키 프로세스’라는 용어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탈북자 난민 6명의 첫 미국 입국에 막후 역할을 한 공화당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캔자스)도 1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1975년 미국과 옛 소련, 유럽 등 35개국이 헬싱키에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열고 헬싱키협약을 체결한데서 출발했다.
서방은 주권존중, 전쟁방지, 인권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이 협약을 근거로 소련과 동구의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했고 결국 공산권 붕괴로 이어졌다. 헬싱키 프로세스를 북한에 적용한다는 것은 인권문제를 핵 문제의 부차적 문제로 다루지 않고 동시에 또는 보다 우선적으로 강도 높게 제기한다는 의미다.
북핵 6자회담의 교착상태 와중에 미국이 강화하고 있는 대북 인권압박을 되짚어보면 헬싱키 프로세스가 실제 원용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개성공단의 노동자 인권문제 제기, 탈북자 김한미양 가족 백악관 초청, 한국국적 탈북자의 첫 미국 망명인정 판결, 탈북자 6명의 첫 난민지위 인정 및 미국 입국허용 등의 흐름은 미국의 실질적 정책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10일 의회 증언에서 밝힌 내용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폴 로젠지그 국토안보부 정책담당 차관보는 이날 하원 국제관계위 난민관련 청문회에서 “망명 담당자들에게 탈북자의 국적을 자동적으로 한국으로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면서 한국 국민과 북한 주민을 구분하기 위해 망명자 관리시스템에 새로운 국적 및 국가코드 기입방식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미 북한인권법에 따라 탈북자의 망명 허용을 쉽게 하기 위해 사전에 법ㆍ제도를 정리해 두겠다는 뜻이다.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은 의회 증언에서 “중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정치, 경제적 지렛대를 갖고 있지만 이를 사용하길 꺼린다”며 “중국은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믿고 있으나 이는 틀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는 것은 핵과 인권문제에서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노림수다. 브라운백 의원은 중국이 탈북자 강제북송을 계속할 경우 유엔제재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이 같은 시도가 헬싱키 프로세스의 다음 단계인 북한의 체제 변환까지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미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북한에 대한 양보와 지원 강화를 천명한 한국 정부와는 분명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향후 한미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예상된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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