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은 ‘자동차의 날’이다. 정부가 1년 365일 가운데 5월12일을 ‘자동차의 날’ 로 정한 이유는 뭘까. 103년전 이날(1903년 5월12일) 한반도에 자동차가 처음 상륙했기 때문이다. 당시 고종 황제가 어차(御車)로 사용하기 위해 미국에 주문한 차는 제물포 항구를 통해 들어왔다. 한민족 최초의 자동차 소유자는 황제였다.
‘황제=최초의 자동차 소유자’라는 등식이 상징하듯 자동차 산업은 국가의 위상과 직결된다. 자동차 산업은 한 나라의 경쟁력 및 기술 수준을 대표하는 종합 기계산업이다.
지금은 위세가 예전 같지 않지만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GM은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을 상징하는 회사다. 또 도요타,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일본과 독일의 자랑이다. 향후 세계 경제성장의 중심 국가로 주목을 받고 있는 브릭스(BRICs) 즉,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도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전략적 배려가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각국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산업의 속성상 전후방 연관효과가 높은 ‘애국적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2만~3만여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다. 철강, 기계, 전자, 전기, 플라스틱, 유리, 고무, 섬유 등 거의 모든 소재분야 산업과 깊은 연관을 맺을 수 밖에 없다. 또 자동차 판매, 정비, 보험, 운수, 관광 등 광범위한 서비스 산업과도 직ㆍ간접적으로 연관을 맺어 고용창출 효과가 매우 크다.
최근에는 환경친화적 미래형 자동차 또는 지능형 자동차를 개발하는데 첨단 전자기술이 폭넓게 응용되면서 정보기술(IT), 차세대 전지, 반도체, 무선통신, 콘텐츠 등의 첨단 산업도 자동차 산업이 드리우는 우산 속으로 들어간 상태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양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한국 경제에 효자 노릇을 해왔다. 우선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제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12%에 달한다. 2003년 자동차 부문 생산액은 75조원으로, 제조업 부문 총생산액(677조원)의 11.1%였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이 비중이 더욱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 생산액은 28조원으로 제조업의 11.1%에 달하며, 22만명의 고용을 창출해 우리나라 제조업 총 고용규모의 8.0%를 차지한다.
국가 경제의 질적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는 더욱 크다. 자동차 산업은 휴대폰, 반도체, 철강 등 우리나라의 다른 수출 주력제품과 비교할 때 국내 주변산업을 북돋우는 전후방 연관효과가 가장 높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영향력 계수’는 1.35로 일반기계(1.15), 전기전자(0.91) 등보다 훨씬 높다. ‘영향력 계수’란 특정산업 부문의 생산물이 한 단위 늘어날 때 다른 부문의 생산이 얼마나 늘어나느냐를 측정하는 것으로, 숫자가 클수록 다른 산업의 생산유발 효과가 크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특히 내수 진작 효과가 크다. KIET에 따르면 대부분의 부품을 국내서 조달하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경우 100원짜리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71.6%의 부가가치가 국내에 남고, 나머지 28.4% 가량은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반면 외국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전기ㆍ전자의 경우는 100원을 만들기 위해 외국에 33.6원, 선박을 만들기 위해서는 32원을 지불해야 한다.
자동차 소유자 입장에서는 달가운 게 아니지만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국가 재정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관련 세금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인데, 2003년 기준으로 자동차 구매, 보유 및 운행 등의 과정에서 부과된 세금은 조세 총액의 16.9%인 24조원에 달한다.
유가상승과 환율 하락 등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2006년 자동차 산업은 수출의 견조한 증가와, 최근 3년간 부진했던 내수가 회복세로 전환된 것에 힘입어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이다. 이에 따라 사상 최초로 자동차 생산 400만대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 내수는 고유가로 인한 유지비 부담, 건설경기 부진, 높은 청년 실업률 등 부정적 요인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으나 내수위축의 주요 원인이던 경기침체가 회복세를 보이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디젤 승용차를 포함한 다양한 신차의 출시와 구형 차종을 신형으로 바꾸려는 대체수요가 겹치면서 2005년 대비 9.4% 증가한 125만대가 국내에서 판매될 전망이다.
수출은 환율 하락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와 고유가로 인한 주요 자동차 시장 정체가 불안 요인이다. 그러나 국산차의 품질 및 브랜드 이미지 상승, 수출 전략차종 투입, 미국 서유럽 등 주요시장 점유율 상승 등 긍정적 요인으로 전년 대비 6.23% 증가한 275만대(435억 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생산, 고용, 재정 등 국민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20여년만에 '세계 빅5' 부상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위상은 급속하게 높아졌다. 1980년 자동차 생산량은 12만대로 당시 세계 자동차 생산의 0.3%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3년 318만대를 생산해 5.2%를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369만9,000대를 만들어 점유율을 5.6%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승용차 부문의 생산비중이 크다는 점을 감안, 승용차 부문만 별도로 비교할 경우 전세계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6~7%에 달한다.
국가별 비교에서도 ‘빅 5’에 속한다. 국내 자동차 생산 규모의 증가에 따라 1990년대 초반 10위권으로 올라섰으며,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외환위기 직후 자동차 생산이 급감한 시기를 제외하면 줄곧 5~6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중국의 급격한 추격으로 6위로 밀려났으나, 지난해 프랑스를 제치고 5위가 됐다.
그러나 시야를 동북 아시아로 고정시키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보유한 일본을 따라잡는 것과 동시에 세계 최강의 잠재력을 지닌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 한국의 추격을 뿌리치려 하고 있다. FTA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한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부품산업 분야에서의 기술 교류는 거부한 채 국내 완성차 시장을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차가 주춤하는 틈을 이용해 도요타를 중심으로 격차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은 독자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자체 개발한 독자 브랜드의 중국 시장 점유율을 6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저가 차종을 중심으로 한국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문준모 기자
■ 수입차 시장 5년새 8배 급성장
2006년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생산과 유통 부문 모두에서 전세계 주요 자동차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우리나라 완성차 업체 구조조정의 핵심은 인수ㆍ합병(M&A)을 통한 국제화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 완성차 업계 구도는 토종 자본이 주도하는 형태였으나, 이후 외국 자본에 의한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이뤄졌다. 대우차, 삼성차, 쌍용차가 이름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다.
현대자동차는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기아차를 인수, 내수시장의 명실상부한 맹주가 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현대와 기아, GM대우, 르노삼성, 쌍용 등이 주요 5사가 되었고, 과거 대우차 소속이던 대우버스와 대우상용차는 전문업체가 됐다.
물론 GM대우와 르노삼성, 쌍용은 생산차종이 적은데다 차종별 생산체제도 현대차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승용차 부문은 현대, 기아,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의 5사 체제다. 버스부문은 현대, 기아, GM대우, 쌍용, 대우버스 등 5사 체제이기는 하지만, 쌍용은 소형 버스만 생산하고 있다. 트럭도 현대, 기아, GM대우, 대우상용차(타타) 등 4사 체제지만 GM대우는 경 트럭만 생산하고 있다.
외국계 완성차 업체 중에서는 르노삼성의 약진이 돋보인다. 르노삼성은 ‘뉴 SM5’ 등 지난해 출시한 ‘뉴 SM’시리즈의 판매 호조로 내수 판매에서는 현대, 기아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경쟁에서 도태된 한국 완성차 업체를 인수하는 사이 현대차 그룹은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나선 것은 국내 시장이 연간 200만대 규모를 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터키를 시작으로 인도 중국 미국 슬로바키아 체코 등지로 생산 시설을 확대하고 있는데, 정몽구 회장의 구속으로 글로벌 전략의 추진에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자동차 유통쪽에서는 외국 수입차의 약진이 본격화하고 있다. 2000년 전체 시장의 0.4%에도 미치지 못했던 점유율이 지난해에는 3.2%로 크게 상승했다.
우리나라에 외국차 수입이 허용된 것은 87년이다. 우선 배기량 2,000㏄이상 대형차와 1,000㏄이하 소형차 시장이 개방됐다. 88년 4월부터는 배기량 규제도 없어졌다. 그러나 공식 수입 첫해인 87년 한해 판매된 차는 메르세데스-벤츠 10대가 전부였다.
수입차가 초기 한국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은 건 높은 관세와 수입차에 부정적인 국민정서 때문이다. 수입개방 초기 관세는 50%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에는 수입차에 기름을 넣는 것을 거부하는 주유소가 있을 만큼 반 외제차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말했다.
수입차 시장은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한다.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가 진출한데 이어 2002년에는 메르세데스-벤츠가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2003년에는 혼다, 마세라티, 페라리가 진출했고, 2004년에는 아우디 코리아, 닛산 코리아, 2005년에는 폴크스바겐 코리아가 설립됐다.
수입차의 국내 시장 진입은 결과적으로 국산차의 품질 향상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우디 코리아 손을래 회장은 “수입차가 선보이기 전에는 ABS와 에어백 등이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수입차가 안전성을 시장 공략의 핵심 포인트로 내세우면서 요즘은 경차에까지 ABS와 에어백 옵션이 장착될 정도로 국산차의 품질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 美軍지프 망치로 뚝딱 '시발차' 출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소유자인 고종 황제가 1903년 처음 탄 승용차는 2인승 오픈 카 형태의 미국 포드차로 추정된다. 캐딜락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포드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차를 운전할 줄 아는 한국인이 없었으니, 고종의 차를 몬 운전자는 외국인(일본인)이었다.
1911년에는 황실용 2대와 총독부용 1대가 추가 도입됐다. 이후 부유층의 자가용과 운수 사업용으로 수입돼 해방 직전인 1945년 봄에는 전국의 자동차가 7,386대로 늘어났다.
광복 이후 1960년 이전은 ‘자동차 산업의 태동기’다. 한국 전쟁 와중에 들어온 미 군용차를 재생하는 공장으로 54년 ‘하동환공업사’와 ‘신진공업사’가 문을 열었다. 이듬해에는 ‘국제차량공업사’를 운영하던 최무성씨 삼형제가 미군용 지프를 망치 등을 이용해 개조,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승용차인 ‘시발’(始發)을 만들었다. ‘시발’은 광복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시발자동차의 월간 생산능력은 승용차는 월 50대, 마이크로버스는 10대였다.
5ㆍ16 군사정부가 62년 4월 ‘자동차공업 5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망치로 만든 투박한 시발은 세련된 일제차인 새나라자동차에 밀려났다. 새나라자동차는 닛산의 블루버드를 국내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생산됐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맹주인 현대자동차가 탄생한 것은 제2차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67년이다. 현대차는 68년 포드와 기술제휴로 ‘코티나’, 이듬해에는 ‘포드 20M’을 생산했다. 현대차 설립 이전인 62년부터 기아산업은 3륜 트럭인 ‘T-1500’을 생산하고 있었다.
72년 도요타가 중국 진출을 위해 신진자동차에서 철수하면서, 신진은 다시 미국 GM과 합작으로 GM코리아를 만들었다. 현대는 비슷한 시기 포드와의 관계를 끊고 자체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기아는 일본 마쓰다의 ‘브리샤’를 도입, 74년부터 국산화 생산을 개시했다. 현대차는 75년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 대량 생산과 처녀 수출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80년대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로 뻗어가는 기초를 다진 시기다. 80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자동차 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이듬해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승용차 생산은 현대와 대우가, 중소형 트럭은 기아가 독점 생산하게 된 것도 위기를 타개하려는 고육지책이다. 합리화조치는 86년 해제됐는데, 해제와 동시에 기아는 ‘프라이드’, 현대는 ‘엑셀’과 ‘프레스토’, 대우는 ‘르망’을 앞세워 전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국산차의 본격적인 대량 수출이 이뤄지고 기술 자립화가 진척되면서 한국은 96년 28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10위안에 드는 자동차 생산국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로 내수시장이 붕괴되고, 대우와 기아차가 잇따라 도산하면서 자동차 산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휘말려 든다. 구조조정은 99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이후 대우차는 미국 GM으로 넘어갔고, 삼성자동차와 쌍용자동차도 해외에 매각됐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삼성·대우 자금위기 "아, 차차!"
자동차는 매력적인 만큼 위험한 산업이다. 현대자동차를 제외하고는 완성차 시장에 진출한 대부분의 국내 재벌이 패배의 쓰라림을 맛봤다.
자동차는 ‘삼성불패’의 신화를 의심치 않던 삼성그룹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혔다. 1994년 11월 승용차 사업에 뛰어든 삼성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99년 자동차 산업에서 철수한다.
삼성은 명예로운 철수를 위해 막대한 부담을 떠안는다. 삼성자동차 부채 2조4,500억원을 책임지는 차원에서 이건희 회장이 가진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주당 평가액 70만원)를 내놓았다. 당시 삼성은 주식 매각 대금이 2조4,500억원에 미달할 경우 부족분을 삼성의 31개 계열사가 보전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채권단과 맺었는데, 합의서의 법적효력을 둘러싸고 최근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재계 서열 5위였던 쌍용그룹은 자동차로 망한 대표적인 재벌이다. 쌍용은 오너가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86년 당시 동아자동차를 인수했다.
쌍용은 이후 91년 벤츠에 막대한 로열티를 주고 승용차 생산에 나섰지만, 저조한 판매와 외환위기에 따른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98년 경영권을 대우그룹에 넘기고 철수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현대차에 앞서 글로벌 자동차 생산체계 구축을 시도했던 대우자동차도 99년 밀려오는 유동성 위기에 좌초하고 말았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모듈화, 공정 100분의 1로 축소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나.’
옛날 노예들이 수탈을 견디다 못해 반란을 일으킬 때마다 외치던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잘난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동차는 다르다. 겉으로는 똑 같은 자동차라도 어떤 부품과 재료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성능은 크게 차이 난다.
실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불과 4~5년 사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받는 대우가 크게 달라졌다. ‘싸지만 성능은 떨어지는 차’라는 평가를 받던 현대차와 기아차는 이제 ‘싸면서도 성능은 일제와 맞먹는 차’가 됐다. NF쏘나타는 ‘컨슈머 리포트’의 최고 모델이 됐고, 스포티지와 오피러스는 소비자 만족도 전문 평가기관인 ‘JD파워’로부터 품질과 디자인 만족도 1위 모델로 뽑혔다.
두 회사 약진의 이면에는 모듈화로 무장한 현대모비스가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모비스는 일본 도요타를 능가하는 자동차 부품의 모듈화를 실현, 모 기업인 현대차의 글로벌 경영을 뒷받침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1999년부터 모듈 부품을 생산, 현대ㆍ기아차가 진출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 옆에 공장을 짓는 방식으로 모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울산, 화성, 이화, 광주, 아산, 소하리, 포승, 서산 등 현대ㆍ기아차 공장 옆에서 또 다른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2002년에는 기아차의 중국 생산 기지인 둥펑위에다기아에 모듈을 공급하는 공장을 설립했으며, 2003년에는 베이징현대기차에 모듈을 보내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현대차의 미국 생산 거점인 앨라배마에도 공장을 지었다. 올해와 내년에는 슬로바키아와 인도에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다.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차체 부문인 섀시모듈(연간 235만대), 운전석모듈(185만대), 프런트엔드모듈(60만대) 등 3가지 핵심모듈을 생산하고 있는데, 모두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2004년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연간 1,800억원 규모의 모듈 공급계약을 맺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가 현대ㆍ기아차에 모듈을 공급하는 방식인 직서열(JIS, Just In Sequence) 방식은 일본 도요타의 ‘JIT’(Just In Time) 방식보다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JIT는 완성차 업체가 의뢰한 시간에 모듈을 공급하는 방식이므로, 모듈업체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정량의 재고를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JIS방식은 완성차 공장에서 제작에 들어가면 모듈 업체도 자동적으로 해당 차종에 맞는 모듈을 생산, 재고부담을 제로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완성차와 관련 모듈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JIS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모듈 생산라인의 불량률이 0%가 돼야 한다”며 “제로 불량률을 지키기 위해 작업자가 정해진 방법대로 공구를 사용하지 않거나, 불량 부품을 사용할 경우 즉각적으로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모듈화란.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자동차 산업의 유행이 된 ‘모듈(Module)’ 생산방식이란 자동차 조립공정의 일부를 부품업체에 이관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모듈생산 품목은 운전석, 섀시, 프런트엔드, 도어, 시트 등이다. 예컨대 운전석 모듈의 경우 종전에는 완성차 업체가 계기판, 핸들, 에어컨 장치, 에어백 등을 생산라인에서 일일이 조립했지만, 모듈 방식을 적용하면 부품사가 이를 미리 완성해 공급하고 완성차는 운전석 모듈을 생산차량에 끼워넣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다.
모듈화가 이뤄지면 완성차 업체는 수만개의 부품을 조립하는 공정을 수 천개 혹은 수 백개로 대폭 줄일 수 있다. 완성차 업체의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부품업체보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모듈 방식을 적용하면, 그만큼 인건비와 관리비를 줄일 수 있다. 또 도어와 운전석 등 소비자 기호가 급변하는 부분은 부품사가 시장 상황에 맞게 개발하고, 완성차 업체는 핵심기능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프리미엄 휘발유' 옥탄가 98~100
“옥탄가 100으로 엔진 성능을 높여주고, 벤젠 등 공해 유발 물질을 50%이상 줄인 친환경 제품이다.”
에쓰-오일이 최근 고급 휘발유 ‘에쓰 가솔린 프리미엄’을 출시하면서 내놓은 설명이다. SK㈜의 ‘솔룩스’나, 올해 선보인 GS칼텍스의 ‘킥스 프라임’도 한결같이 ‘친환경적’이고 ‘고옥탄가’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갈수록 늘고 있는 수입차와 국산 고급차량 운전자를 겨냥한 제품이다. 옥탄가는 휘발유가 연소할 때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높을수록 좋다.
휘발유의 변천사는 자동차 성능 개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엔진이 요구하는 것보다 낮은 옥탄가의 휘발유 제품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엔진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력이 좋고 공해를 내뿜지 않는 차를 운전하려는 소비자들의 기호와도 연관돼 있다. 때문에 옥탄가는 지속적으로 높이되, 납이나 황 함량은 낮추는 방향으로 제품 개발이 이뤄져 왔다.
국내 정유업계는 1989년부터 옥탄가를 기존 88∼89에서 94∼95로 올리면서 휘발유 품질 고급화를 선언, 옥탄가 전쟁이 벌어졌다. 업체들은 옥탄가를 높이기 위해 납 화합물 등을 다투어 첨가했으나 대기환경보전법이 발효되면서 92년 이후 발암 물질로 알려진 납과 벤젠 등의 사용이 규제됐다. 업체들은 93년부터는 납 함유량을 ℓ당 0.013g으로 낮춘 제품을 ‘무연휘발유’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에 맞춰 황 함량도 200ppm이하로 줄여야 했다.
현재 국산 자동차 엔진의 경우 옥탄가가 91~92에서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일반 휘발유의 옥탄가도 92정도다. 물론 고급 휘발유는 98~100이 주종을 이룬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산차라면 차종에 관계없이 일반 휘발유든, 고급 휘발유든 엔진 성능에 미치는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유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업체 관계자는 “고급 휘발유를 써본 소비자들이 일반 휘발유를 넣었을 때보다 훨씬 출력이 좋고, 엔진도 부드럽게 움직인다며 고 옥탄가 제품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 세계 최고 품질로 지구촌을 누빈다
타이어는 자동차와 지면 사이에서 차의 구동력과 제동력을 노면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무게를 지탱하며 지면으로부터의 충격을 흡수해 승차감을 향상시키는 자동차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우리나라 타이어 산업의 역사는 한국타이어의 전신인 ‘조선타이야’가 1941년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한국타이어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태동기인 62년 이미 수출을 시작했다. 한국타이어의 맞수인 금호타이어는 60년 삼양타이어로 출범했다.
2006년 현재 한국타이어가 세계 8위, 금호타이어가 세계 10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나라 타이어의 경쟁력은 자동차 만큼이나 국제수준에 올라온 상태이다. 특히 한국과 금호타이어 모두 중국에서의 활약은 눈부시다. 99년 중국에 공장을 설립한 한국타이어는 진출 4년 만인 2003년 미쉐린과 굿이어 등 세계적인 타이어 브랜드를 제치고 중국 승용차용 타이어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지난해 국내 타이어 업체의 수출 총액은 25억 달러에 달하는데, 전세계 170여 국가에서 한국산 타이어를 쓰고 있다. 국가별 생산규모로는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4번째다.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타이어는 2004년 미국 최고 권위의 소비자 조사 기관지인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가 실시한 테스트에서 최우수 제품군으로 추천됐다. 또 지난해에는 일반 타이어에 비해 승차감과 코너링 성능이 대폭 향상된 고성능 타이어(UHP 타이어ㆍ벤투스 프라임)이 독일 최대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빌트(Autobild)로부터 ‘매우 우수(Very Recommendable)’ 평가를 받았다. ‘벤투스 프라임(K105)’과 유럽 수출용 신제품인 ‘옵티모(K415)’는 올해에도 독일 자동차 전문지들로부터 최고 등급인 ‘매우 우수’ 평가를 받았다.
국내 타이어 업체들은 모터스포츠 활동을 통해 해외에 자사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알려 왔다. 현재 한국타이어는 영국 랠리 챔피언십, 독일 리카로 F3 등 유럽지역의 유명 모터스포츠 대회와 미국 SCCA, 일본 슈퍼GT 등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금호타이어도 말보로컵 F3, 르망 24시 등에 참가하고 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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