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잇따른 ‘비밀 계좌’ 파문으로 벼랑 끝에 내몰렸다. 두 사람 모두 물러날 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르 카나르 앙셴느(10일자)는 1997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비밀정보 관리를 책임지는 국방부 산하 정보국장을 지낸 필립 론도 전 정보국장을 인용, “시라크 대통령이 1992년 일본의 도쿄소와은행(東京相和銀行)에 비밀계좌를 만들어 3억프랑(5,832만달러)을 예치하고 있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문화 재단’이 계좌로 돈을 입금했다”고 보도했다. 시라크 대통령 측은 “근거없는 억측”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그러나 클리어스트림 스캔들 관련 혐의로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에 대한 ‘표적 수사’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곤란에 빠진 상황에서 이번 의혹이 불거져 나와 설상가상의 형국에 빠졌다.
앞서 론도 전 국장은 2004년 1월 클리어스트림 스캔들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빌팽 총리가 “시라크 대통령이 지시했으니 니콜라 사르코지 재무장관이 비밀계좌를 갖고 있는 지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며 “비밀 계좌와 주인 이름이 담긴 리스트도 건네 줬다”고 말했다. 클리어스트림 스캔들은 1991년 프랑스 정치인, 기업인들이 대만 정부에 프리깃함 6척을 파는 대가로 받은 리베이트 5억프랑을 룩셈부르크 클리어스트림 비밀계좌에 숨겨뒀다는 내용으로 치안판사에 제보됐다.
그러나 이 제보가 허위로 판명되면서 론도 전 국장의 발언은 최초고용계약법(CPE) 폐기로 입지가 흔들리던 빌팽 총리를 쓰러뜨리는 결정타로 작용하고 있다.
빌팽 총리가 시라크 대통령의 묵인 아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권 후보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일 사르코지 장관을 위기에 빠뜨리려 했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여야 할 것 없이 빌팽 총리를 “부도덕의 극치”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1야당인 사회당은 9일 “빌팽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곧 의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장관의 이름을 꺼낸 적도 없다”고 펄쩍 뛰던 빌팽 총리는 뒤늦게 “사르코지 이름을 말한 적은 있지만 그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 적은 없다”고 발뺌했다.
사르코지 장관은 표정 관리하느라 바쁘다. 위기에 빠진 빌팽 총리에 대한 퇴진 압박이 거세지면서 힘 안들이고 대선 후보자리를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빌팽 총리가 물러나고 그가 총리를 맡을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그는 9일 비밀계좌 관련 정보를 제공한 제보자를 찾아달라고 제기한 소송과 관련, 판사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조사 직후 사르코지 장관은 프랑스 남부 님 시에서 가진 연설에서 “나를 부패 스캔들과 연관지으려는 시도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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