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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화 연구 50년 김열규 교수 '한국인의 자서전'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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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화 연구 50년 김열규 교수 '한국인의 자서전'펴내

입력
2006.05.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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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길, 아득한 길을 걸어왔다. 뒤돌아보는 시선들이 아물댄다. 일부러 거쳐서 온 숱한 지점들인데도, 하고 많은 구비들인데도 진정 아득하다. 발바닥은 부르틀 대로 부르텄다. 발가락 끝이 까뭉개지기도 했다. 종아리가 퉁퉁 부었다. 그런데도 그 소슬한 길, 그 아슴푸레한 길을 제대로나 지나왔는지, 무거운 걱정이 앞선다.”

‘한국인은 과연 누구인가’를 화두 삼아 “반 백년 신화를 뒤지며 살아 온” 김열규(74) 서강대 명예교수가 ‘한국인의 자서전’(웅진지식하우스 발행)을 펴냈다. 한국인의 죽음(‘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ㆍ2001년)과 웃음(‘왜 사냐면 웃지요’ㆍ2003년)에 이은 “조금 과장하자면 50여년 연구 인생의 결산인”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신화와 옛이야기 속에 숨죽이고 있는 우리 겨레의 ‘짠지 같은 인생’‘간을 친 목숨 살이’를 씨줄로 여성성을 날줄로 해 우리네 민중의 ‘음지의 집단 자서전’을 엮어냈다. ‘어머니’에서 ‘탄생’해 ‘자라고 크고’, ‘사랑’하고 ‘결혼’해서 ‘세상살이’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구비구비 걸어가다 ‘죽음’에 이르는 일생과 그 일생들을 더듬어 해석하고 상상한 한민족 집단기억의 기록이다.

“기가 차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경남 고성군 그의 집으로 10일 전화를 했다. 그는 1991년부터 고향인 고성에서 사는데, “한이 맺힌 사람은 동해를 찾고(거친 파도에 시원하게 풀라는 뜻이다), 사랑이 필요하면 아기자기한 남해로 와 소곤대라”고 농을 던졌다.

그는 왜 우리 민족의 신화에 천착해왔을까. “신화에는 사람의 심층 의식, 우리 겨레의 집단적 무의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신화와 대면하는 것은 잃어버린 과거로 돌아가서 오늘의 나를 찾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숨겨진 삶의 본원적 모습, 우리 한국인의 ‘원형’이나 ‘집단 무의식’을 거울로 해서 지금 내 얼굴이 어떻게 비춰질까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화와 상징, 옛 우리 삶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지금 우리의 삶과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근원적 질문에 어떤 답을 줄까.

그는 자신이 만든‘글로컬리즘’(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합성)이란 말로 설명했다. “글로벌리즘은 까딱하면 우리 한국인의 독자성 해체로 몰아갈 위험성이 있으니까, 새삼스레 우리의 정체성을 밝혀내는 것도 목적이라면 목적입니다. ‘정신의 끈끈이’’영혼의 동아줄’을 구해야죠. 역사의‘바뀜’ 속에 절대 변하지 않는 ‘불변’이 있지요. 역사가 확대경이라면 신화는 숨겨진 본원을 찾는 ‘현미경’입니다.”

그가 우리 민족의 원형으로 ‘어머니로 상징되는 여성성’과 ‘고통과 수난, 그것을 악착같이 이겨낸 악바리 정신’을 든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인은 맵고 짜지요. 간을 친 기운이랄까요. ‘짠지 인생’을 땀 범벅이 되어 살아왔지요.”그 집단적 상흔과 아문 딱지에서 비통과 비창의 중모리에 뒤이어 비장의 휘모리가 장단을 울린다 했다.‘맵짜다’는 건 그저 악다구니를 쓰는 게 아니라 고난과 고통에 맞서는 열정의 뜨거움이다.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내가 지나 봐라” 이를 악물고 그 끝에 가서 참답게 웃는 것, ‘꽃이 필 때까지 짠기 있는’게 우리다. “우리 목숨이란, 소금 뿌려지고 고추 흩뿌려져서 거꾸로 생기 되살아 나는 김장 배추와 무”같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집단 자서전 속에서 유독 큰 상처를 지니고 끈질기게 맞겨뤄 온 것이 우리들의 어머니 그리고 ‘페미니티’(여성다움)라고 했다.

그가 여성성을 재발견한 건 귀향해서 본 할머니들 덕이라 했다.‘거꾸로 팔자걸음’의, 허리가 땅과 평행을 이룬 꼬부랑 할머니. “처음에는 참 저런 걸음걸이가 다 있는가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평생을 그럴 수 밖에 없을 만큼 앉아서 삶을 버텨왔구나 했지요. 아궁이 앞에서, 밭에서, 곡식을 털 때, 그 위에 짐까지 이고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 우리 근대화에도 그렇고 성공한 사람, 남자들의 밑바닥엔 여편네니 하고 깔봄을 당한 여성, 어머니들이 있습니다.”그의 책을 보면 실제 여성들은 한결같이 ‘고추’보다 더 맵고, 자신들의 ‘입’이 사내들 ‘고추’보다 훨씬 더 알알하게 맵다.

그는 “지금 우리 한국인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입는 ‘3잘’(이것도 그의 조어다)에 온통 빠져 있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 우리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면서 “‘내가 누구냐’고 묻고, 그에 앞서서 또‘우리가 누구냐’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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