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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형식 빌려 인간관계 탐색하는 '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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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형식 빌려 인간관계 탐색하는 '버블'

입력
2006.05.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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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하이오주 시골마을의 인형공장에서 일하는 마샤(데비 도버레이너)는 병든 아버지를 모시는 중년의 노처녀다. 뚱뚱한 체형에 내세울 것 없는 외모의 그녀는 직장 동료인 연하의 청년 카일(더스틴 제임스 애슐리)에게 야릇한 감정을 품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미혼모인 로즈(미스티 돈 윌킨스)가 새로 입사하면서 세 사람 사이에는 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버블’(원제 Bubble)의 이야기 흐름은 언뜻 보면 스릴러 장르의 구조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도벽이 심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로즈가 살해된 이후 마샤와 카일 그리고 로즈의 전 남편 제이크(카일 스미스)가 용의선상에 오르고 형사가 이들을 취조하는 10분 정도는 과연 누가 살인범일까라는 궁금증을 일으킨다.

로즈에게 마음 속의 연인을 빼앗기고 무시까지 당한 마샤나 돈을 도둑 맞은 카일, 다혈질인 제이크 모두 저마다 충분한 살해 동기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내성적이지만 착실한 카일과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헌신적인 마샤, 의외로 차분한 성격의 제이크는 전형적인 범인의 모습과 동떨어져있다.

이렇듯 스릴러로서의 충분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버블’은 누가 범죄를 저질렀고, 어떻게 수사망을 피해가고, 경찰은 과연 진범을 잡아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조밀한 극적 전개가 주는 긴장감을 선택하는 대신 카메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품’처럼 근근이 형체를 유지해 가는 인간관계의 황량하고 싸늘한 풍경을 조망한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인형처럼 인공적인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지 못한다. 요컨대 ‘버블’은 심장을 옥죄거나 한 박자 빠른 두뇌회전을 원하는 영화라기보다 마음의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포착해내는 소통과 고독에 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테이프’(1989) ‘풀 프론탈’(2002) 등 비주류 영화를 만들면서도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등 상업영화도 능숙히 연출해낸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실험성 짙은 HD영화. 미국에서 극장 개봉과 케이블 TV 방영, DVD 발매가 동시에 이루어져 “유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판과 “저예산 독립영화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개봉 형식이 파격적인 데 비해 영화의 형식적 미학은 다소 평범하다. 국내에서는 VOD서비스까지 포함, 4개 경로를 통해 11일 한꺼번에 공개된다.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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