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10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지난해보다 9계단이나 급락한 것은 국내 기업경영 환경 여건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평가는 올해 초 국내 경기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조사한 결과라는 점에서 정부를 비롯해 경제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줄 전망이다.
기업인 설문평가가 하락 주범?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중국(19위)과 인도(29위) 등 개발도상국보다 못하게 나온 것은 국내 기업인들의 부정적인 설문 평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IMD는 매년 국가경쟁력 평가를 할 때 경제운영성과(38개), 정부행정효율(61개), 기업경영효율(60개), 발전인프라(79개) 등 4대 분야의 총 238개 평가 항목을 합산해 순위를 산정한다. 이 중 산업 통계자료가 3분의 2이고, 해당국가 기업인 설문조사가 3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한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우 4대 분야 중 기업인 대상 설문조사가 주를 이루는 정부행정효율(31→47위)과 기업경영효율(30→45위) 순위가 지난해 보다 각각 16, 15계단이나 급락, 국가경쟁력 순위를 끌어 내렸다.
경제운영성과(43→41위)와 발전인프라(23→24위)는 지난해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국가의 각종 경제ㆍ산업 지표는 그다지 나빠지지 않았지만 기업인들의 경영 체감 온도는 더욱 싸늘해 졌다는 뜻이다.
산업연구원의 김원규 산업경쟁력실장은 이에 대해 “설문조사 결과로 이뤄지는 순위는 평가 항목에 대해 기업인들이 해당 시기에 느끼는 만족도 조사에 가깝다”며 경쟁력 순위 하락의 의미를 축소했다.
설문조사 시점에서 불거진 삼성ㆍ현대차 수사와 환율불안, 철도파업 등이 설문조사에 영향을 미친 만큼 “순위가 급격히 하락한 데는 비정상적인 부분이 많이 가미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는 국내 기업인들이 그 만큼 우리나라에서 기업활동을 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는 반증”이라며 “기업 환경이 더 악화한 지금 설문조사를 한다면 더욱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환경 개선이 급선무
IMD의 보고서 세부 항목을 보면 우리 경제는 노사 관계, 금융전문가 부족(이상 61위), 감사와 회계의 투명성(59위), 중소기업의 효율성(58위), 경영이사회의 효율적 운영(56위) 등 주로 기업경영효율성 분야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이는 우리 경제가 아직 고용의 유연성, 경영의 투명성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등 후진적인 기업 환경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이 투자 여력을 가지고도 신규 사업 진출을 망설이는 것은 국내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기업은 투명성 강화 등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정부도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영웅 기자 herosong@hk.co.kr
■ 정부 "기업인 설문 결과가 나빠서"
정부는 IMD가 발표한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급락한 데 대해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한 설문조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설문이 이루어졌던 올 2~3월 부정적인 이슈들과 언론보도가 많아 설문지표 결과가 급락했다는 주장이다.
IMD의 국가경쟁력 판단지표는 238개로 이 중 125개는 통계지표이며, 나머지 113개는 3,000여 명의 국ㆍ내외 기업인들 설문결과로 작성된다.
한국의 경우, 통계지표는 71개가 지난해에 비해 상승하거나 그대로 유지됐고 54개는 하락했다. 반면 설문지표는 113개 중 상승ㆍ유지된 것은 고작 29개였고 하락한 것은 84개였다.
재정경제부 조원동 경제정책국장은 “기업인들 설문이 이루어졌던 2~3월에 부정적인 경제 이슈들이 많이 부각됐고 그러한 것들이 설문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금논란, 고유가ㆍ환율 불안, 아이칸의 KT&G 공격, 론스타 사태, 김재록씨 로비의혹과 현대차 비자금 사건 등 기업인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슈들이 평년에 비해 많이 쏟아졌고 그만큼 부정적인 보도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재경부는 구체적으로, ‘보호주의가 기업경영을 저해하고 있는가?’라는 설문지표 순위는 론스타 사태로 불거진 해외자본에 대한 경계심 탓에 35위에서 55위로 떨어졌으며, 국가채무ㆍ감세논쟁으로 ‘공공재정관리가 개선되고 있는가?’라는 설문지표의 순위가 17위에서 52위로 급락했다고 강조했다. 같은 이유로 환율안정성에 관한 지표는 지난해 2위에서 올해 55위까지 하락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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