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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씨네다이어리/ 우리 마음 속 아직도 '국경'이…

입력
2006.05.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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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수님은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얗고, 그래서 탈북자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죠.” 한 탈북자의 남한 정착기를 다룬 짧은 다큐멘터리 ‘아리랑 소나타’에 나온 어느 남한 사람의 말이다. 북한에서 상위 1% 계층에 들었고 피아노를 전공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음악의 자유’를 위해 탈북을 감행한 후 성공적으로 남한 사회에 착근 했다. 헌칠한 키에 귀공자 같은 용모를 지닌 그가 먼저 “북에서 왔습네다”라고 ‘실토’하기 전까지 주변 사람들은 그를 그저 남한에서 나고 자란 매력적인 음악학과 교수로 여길 뿐이다.

탈북자나 북한 주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천형과도 같은 가난의 이미지다. 단지 걸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추레하기 그지없는 옷과 깡마른 얼굴에 작은 키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북한 주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탈북자의 가슴 아린 사랑을 다룬 ‘국경의 남쪽’이 개봉 첫 주 재앙에 가까운 흥행 성적표를 받았다. ‘미션 임파서블3’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영화들과의 대결에서도 참패 했다. ‘국경의 남쪽’은 차승원이라는 스타를 등에 업었고, 스타 PD 출신인 안판석 감독이 메가폰을 드는 등 ‘호객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게다가 기본 관객층이 두텁다고 평가 받는 멜로 영화여서 제작사는 흥행 결과를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배급을 담당한 CJ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 어린이날이 낀 황금 연휴로 개봉을 앞당겼는데도 예상 밖으로 성적이 저조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미션 임파서블3’와의 맞대결을 자청한 것이 화근이겠지만, 우리들 마음 속의 보이지 않는 ‘국경’이 ‘국경의 남쪽’의 결정적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군내 나는 현실을 끌어안은 통속 신파라 해도 멜로 영화는 낭만과 판타지를 지렛대 삼아 관객을 울린다. 그러나 탈북자라는 단어에서 사랑의 판타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관객들은 ‘국경의 남쪽’에 다가서기를 주저한 것 같다. 탈북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살갑기는커녕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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