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인 섬유업체 A사는 2년 연속 경상손실과 자본잠식 등으로 퇴출 위기에 놓여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장외기업 B사는 A사를 인수, 코스닥에 우회상장했다.
B사 역시 75%의 자본이 잠식돼 있었고 경상적자를 기록한 부실기업이었으나, 자사의 주식가치를 자산가치의 9배로 부풀려 산정함으로써 A사를 인수할 수 있었다. 우회상장 효과로 A사 주가는 열 배 넘게 급등했다.
이제 B사와 같은 부실기업의 코스닥 ‘뒷문 입성’은 불가능해졌다. 금융감독위원회는 9일 우회상장한 기업도 신규상장에 준하는 요건을 충족하는지 심사해, 자격이 미달할 경우 상장을 폐지시키는 등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위 김용환 감독정책2국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의 코스닥시장 우회상장 기업 규제안을 발표하고, 내달 중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우회상장이란 장외기업이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ㆍ합병해 상장 효과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우량 장외기업이 복잡한 기업공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손쉽게 증시에 진입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으나, 지난해부터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자 부실 장외기업들이 이를 악용, 시장에 대거 진출했다.
금감위에 따르면 2004년 37건이었던 우회상장 건수는 지난해 67건으로 급증했으며, 올 들어서도 벌써 37개 기업이 뒷문으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그러나 지난해 우회상장한 사례 중 상장 주체인 비상장기업의 49%(33사)가 경상손실을 기록했거나 자본 잠식 상태인 부실기업인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위는 이 같은 불건전한 우회상장을 막기 위해 합병은 물론 포괄적 주식교환, 주식스왑, 영업양수와 결합된 3자배정 증자 등 다양한 방법의 우회상장에 대해 모두 신규상장에 준하는 요건을 충족하는지 심사할 예정이다.
이 요건은 자본잠식이 없고, 경상이익을 낸 상태여야 하며, 감사의견에 문제가 없고 주요주주의 지분은 6개월 동안 변동이 없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바로 상장을 폐지하고, 요건을 충족했더라도 해당 종목에 대해 거래소 전산시스템에 ‘우회상장 종목’임을 2년간 표시토록 했다.
또 합병비율 등을 산정할 때 장외기업이 자사의 수익가치를 지나치게 부풀려 상장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앞으로 합병비율 산정 시 외부평가를 2개 이상의 외부평가기관(회계법인)에 맡겨 동시에 평가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우회상장 정보를 알고 있는 내부자 등이 이를 이용하지 않도록 불공정거래 감시도 강화하기로 했다.
금감위의 이번 발표에 대해 증시 전문가들은 “사실상 편법 우회상장은 끝났다”며 “코스닥시장 건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응이다.
대우증권 신동민 연구원은 “그동안 우회상장 기업의 경우 코스닥시장의 테마주를 선도하면서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가 많았다”며 “우회상장 규제안은 테마로 변질된 코스닥 시장의 질적 개선 측면에서 순기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발표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우회상장한 기업들간의 구조조정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 영업이익 측면에서 실적이 가시화하지 않는 기업들은 합종연횡 내지는 퇴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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