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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영화감독과 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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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영화감독과 정장

입력
2006.05.1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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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영상자료원에서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 무삭제판을 보고 왔다. 원래 2시간 반이 넘는 영화가 1980년 개봉 당시에는 검열과 제작자의 입김 때문에 1시간 20분으로 반토막 나 극장에서 상영되었다는 사실은 어이없었지만, 26년이 지난 지금 봐도 생생한 활력이 느껴지는 걸작이었다.

● 선배들 촬영장에서도 꼭 갖춰 입어

상영 후에는 이두용 감독님과 관객들이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감독님이 말쑥하게 차려 입은 정장이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젊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세련된 화술과 유머는 그 매끈하고 ‘예의 갖춘’ 옷차림에서 나온 것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수년 전 촬영지 헌팅차 들렀던 남도의 어느 민속마을에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고 계시던 감독님을 멀찌감치서 지켜본 적이 있는데, 당신은 그때도 멋스러운 정장 차림이었다. 굳이 먼발치서 바라봐야 했던 것은 당신이 너무 높고 멀게만 느껴지는 선배라서가 아니라,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던 까마득한 후배의 불량한 복장상태 탓이었다.

사실 요즘의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은 정장을 거의 입지 않는다. 아니, 정장 한 벌씩 갖고들 있는지도 의문이다. 촬영장에서는 방수, 방한되는 기능성 자켓과 등산화 비슷한 신발들이 유니폼처럼 돼버린지 오래고, 어쩌다 영화제 같은 공식행사에서도 캐주얼한 재킷 하나 걸칠 뿐이지 제대로 수트를 입는 감독은 극소수다. 물론 격식에 매인 옷차림을 거부하는 것이 자유로운 사고가 생명인 창작자로서의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내의 이런저런 영화제 시상식에서 보이는 영화인들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이 동업자인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때가 있다. 수상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시상식에 참석도 하지 않는 후보자들의 행태와 더불어 스스로 국내 영화제, 나아가 우리 영화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외국의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턱시도를 입고 무대에 오른 우리 영화인들의 모습이 낯설고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하다.

● 영화에 대한 자긍심·열정 느껴져

영상자료원 복도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로 감독들의 사진들이 붙어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장 차림으로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심지어 질퍽한 논두렁에 양복을 입은 채 드러누워 손가락으로 앵글을 잡고 있는 고 신상옥 감독님 같은 분도 계시다. 거기서 묘한 아우라가 전달됐다. 그들의 자긍심, 열정, 권위가 저절로 느껴졌다.

한국영화가 놀라운 성장을 했고 국제적인 인정도 받고 있는 현재의 영화인들은 지난날의 선배 영화인들 같은 긍지와 자부심으로 무장돼있는지 모르겠다. 양복을 입고 안 입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음 영화 촬영할 때는 나도 정장 차림으로 현장에 나가볼까 한다. 그럼 선배들의 정기가 전해지려나? 일단 양복을 한 벌 맞춰야겠군. 넥타이 매는 법도 배워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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