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에서 내려다 본 평택평야는 한 가운데를 지나는 안성천으로 분단돼 있었다. 넉넉한 논물을 가득 담은 위쪽 안성벌판엔 경운기와 트랙터가 분주히 움직이며 모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아래쪽 황새울벌판은 입하(立夏)가 지났는데도 지난해 가을걷이를 끝낸 그 모습 그대로였다.
농기계와 못자리 대신, 국방색 군용트럭과 군인들의 숙영시설이 들어선 이곳은 국방부가 병력을 투입하고 철조망을 두른 주한미군 기지이전 예정지.
9일 장병 격려차 현장을 찾은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군인으로서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장병들은 5일 시위대와 부딪치면서 받은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듯했다. 당시 시위대와 충돌했던 육군수도군단 송영호(육사38기) 대령은 “시위대가 휘두르는 죽봉과 각목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지만 군인들이 맨몸으로 당해야 한다는 무력감이 컸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진입으로 뚫린 철조망은 대부분 복구됐다. 대규모 시위에 대비해 대추리와 도두리에 인접한 지역은 이중철조망까지 설치했다.
시위대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굴삭기를 동원해 철조망 사이에 깊은 도랑을 파는 작업도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경계병들에게는 경찰 진압복과 비슷한 보호장구와 진압봉도 지급됐다.
평택기지 예정지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은 대략 2,700여명. 일부 공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보병으로 낮에는 시위진압 훈련을 하고 밤에는 경계를 서고 있다. 허허벌판에다 숙영지를 마련하다 보니 불비한 것들이 너무 많다.
전기는 꿈도 꿀 수 없고 씻을 물이 부족해 장병들은 세탁과 목욕에 어려움을 겪었다. 17사단 수색대대 소속 우승식(21) 이병은 “먹을 물은 충분한데 처음에는 씻을 물이 없어 물티슈로 간단히 닦았다”고 했다.
1㎙ 높이에 2평 남짓한 야전텐트에는 4, 5명이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윤 장관은 “앞으로 컨테이너 막사를 마련해 숙영시설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작 장병들의 걱정거리는 다른 데 있었다. 국방부가 군 형법 적용 등 엄포를 놓긴 했지만 시위대가 또다시 난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14일 대추리에서 1만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예정해 놓고 있다.
평택=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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