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고등학생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두 나라가 공동으로 단일 역사 교과서를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두 지도자는 양국의 선린우호와 미래를 위해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라며 적극 나선다.
양측 학자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 마침내 3년 만에 공동 역사 교과서가 결실을 보았고, 내년 2학기부터 양쪽 고등학교에서 정식 교과서로 사용하게 됐다. 서로 다른 두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함께 만든 최초의 사례다.
■물론 가상이다. 하지만 두 나라를 프랑스와 독일로 바꾸면 그대로 현실이 된다. 두 나라 고등학생들은 3년 전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청소년의회에서 유럽을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이끌려면 공동의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에게 건의했다. 두 지도자는 교과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했다.
그리하여 양국 관계자들이 지난 4일 1차 대전 당시 격전지인 프랑스 페론에서 교과서 공개 행사를 열었다. 교과서 제목은‘이스투아르/게쉬히테’. ‘역사’라는 뜻의 프랑스어와 독일어(Histoire/Geschichte)를 나란히 붙였다. 독일어판은 7월 10일 자브뤼켄에서 공개된다.
■이 책은 부제가 ‘1945년 이후 유럽과 세계’로 현대사를 다뤘고, 마무리 중인 다음 권은 1945년 이전에서 18세기까지를 담아 내년에 출판한다. 재미있는 것은 나치 집권 당시 히틀러가 독일 국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는 점,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 비시 괴뢰 정권의 문제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던 반면 미국에 관한 시각에서 이견이 많아 균형 있는 서술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대목이다.
프랑스인들은 독일인이 친미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독일인들은 프랑스인이 반미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예상과 달리 정작 2차 대전 부분이 별 논란이 되지 않은 것은 패전 이후 독일이 해 온 과거사 청산과 관계가 있다.
■독일은 전쟁 배상 및 과거사 청산과 같은 하드웨어적 측면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폴란드, 체코, 러시아 등 주변 전쟁 피해국과 수많은 교과서 포럼 등을 개최해 그 결과를 역사 서술에 적극 반영해 왔다. 이제 전쟁 책임이나 그 이후 반성 문제에 관해 독일을 비난하거나 우려하는 주변국은 없다. 이번 교과서도 그런 오랜 신뢰의 토대 위에서 국가 차원의 공동 작업이 가능했다. 한국과 일본의 지루한 역사 교과서 공방을 생각하면 프랑스와 독일은 참 멋진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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