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어제 장중 한때 달러 당 920원대로 급락했다. 대부분의 중소 수출업체가 수익성은 고사하고 아예 문을 닫아야 할 수준이다. 과격한 하락 속도에 당황한 정부 관계자들은 시장 개입을 암시하며 ‘달러 퍼내기’ 묘안 짜기에 골몰하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채산성을 맞추지 못한 1,000여개의 영세업체가 이미 수출을 포기했다는데, 이런 추세라면 얼마나 많은 업체가 도산할지 짐작키 어렵다.
지난 주 노무현 대통령이 “환율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며 “일시적으로 자본수지 적자가 나더라도 해외투자를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시장은 잠시 주춤했다.
사실상 시장개입 의사로 비친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환율 우려 발언도 한몫 했다. 그러나 주말을 지나면서 글로벌 달러 약세의 불가피성이 다시 확인되고 국내 달러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는 판단이 가세해 정책당국의 권위는 무색해졌다.
추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정부의 말 몇 마디로 되돌릴 수는 없다. 정부와 기업의 인식, 또 정책으로 뒷받침할 제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우선 ‘마지노선’ 등의 말장난을 집어치우고 적정환율이 얼마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수년간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을 지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방어해온 흔적이 짙은 까닭이다. 민간 연구기관이 그 수준을 950원대 안팎으로 잡는 것을 보면, 올해 평균 환율을 1,010원으로 추정한 정부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왜소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외환시장 규모나 외환파생상품, 제한된 시장 참가자와 거래 등도 전면적으로 손질할 때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인데 하루 거래규모가 세계 외환시장의 0.6%인 220억 달러에 불과하다면 작은 충격에도 급격한 쏠림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ㆍ중ㆍ일 3국이 환율 모니터링 등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것은 하나의 진전이다. 현상에만 급급해 돌연 해외부동산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땜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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