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지분 매입을 둘러싼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간 분쟁이 큰 가닥을 잡아가고 있어 주목된다.
범(凡) 현대가인 KCC가 8일 현대건설 인수설을 부인하는 공시를 했고, 현대중공업측도 9일 금융감독원에 현대상선 지분 변동 신고서를 내면서 ‘단순 투자’로 재차 명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시규정을 어기지 않는 한 당장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그룹을 접수하기 위해 상선 지분을 매입했다는 주장이나, KCC와 손잡고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지분을 사들였다는 견해는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물론 현대중공업측이 단독으로 현대건설을 인수할 가능성, 이를 통해 현대그룹을 우회 접수하거나, 다른 범 현대가와 연대해 그룹을 인수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현대그룹도 이를 의식한 듯 “어차피 길게 갈 수 밖에 없는 싸움”이라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KCC는 이날 일부 언론의 ‘현대건설 인수’ 보도와 관련, 증권선물거래소의 조회 공시 요구를 받고 “현재까지 검토된 사항이 없다”고 부인했다.
‘현재까지’라는 단서를 앞세우고 있어, 앞으로도 인수할 뜻이 없다는 확정적 언급은 아니다. 하지만 KCC 관계자는 “실리콘 공장 건설 등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등 신성장 사업과 해외 진출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라며 “자체 건설회사(KCC건설)도 있는 상황에서 현대건설을 인수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금감원에 제출할 현대상선 매입에 따른 지분변동 보고를 통해 투자 목적임을 다시 밝혀 불필요한 오해를 잠재우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시를 통해 경영참여가 아닌 단순 투자 목적임을 재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현대상선 유상증자 참여 여부는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항으로, 현대상선 경영권 행사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현대그룹도 이날 월례 계열사 임원회의를 갖고 최근의 경제동향 점검과 함께 현대상선 분쟁에 따른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그룹 관계자는 “다음달 14일 현대상선 유상증자와 관련해 기존 주주의 신주배정 청약이 이뤄질 때 현대중공업이 참여하면 적대적 인수 합병(M&A) 의사를 노골화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이 유상증자를 신청할 경우 ‘백기사’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편 현대상선 유상증자를 위한 주주명부 폐쇄일인 19일이 되면 현대중공업과 범 현대가 연대설도 ‘진위’가 가려질 수 있다. 주주명부가 폐쇄되면 공시의무가 없는 지분 5% 이하의 주주들도 모두 드러나 누가 몰래 지분을 확보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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