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930원 선 밑으로 폭락한 것은 일차적으로 엔ㆍ달러 환율의 하락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외부요인이 작용하지 않을 때에도 원ㆍ달러 환율은 떨어졌다. 국내외환시장의 수급불균형(달러공급초과) 탓이든, 혹은 시장 참여자들의 투기적 기대심리 탓이든 그랬다. 대외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날엔 대내적 요인에 의해, 국내 요인이 작동하지 않는 날엔 해외 요인에 의해 떨어졌다. 결국 원ㆍ달러 환율은 이래도 떨어지고 저래도 떨어지는 일방통행식 질주를 거듭해왔던 것이다. 이른바 상방(上方)경직형 환율이다.
원ㆍ달러 환율은 지금 업계의 ‘수출임계점’에 근접하고 있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수출기업들의 생각하는 ▦적정환율은 1,015원 ▦손익분기환율은 985원 ▦수출포기환율은 905(대기업)~908원(중소기업)이다. 설문조사에 담긴 ‘엄살’요인을 감안하더라도, 920원대의 환율은 가격경쟁력에 몸을 기대야 하는 중소 수출기업들로선 감당키 힘든 수준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환율이 떨어져도 품질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 덕분에 수출신장률은 두 자릿수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물량은 미미해도 전체 수출기업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중소 업체들은 사실상 고사위기에 처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대응은 조용하다. 한덕수 부총리도 이날 간부회의에서 “환율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는 원칙론적 입장만 피력했을 뿐, 930원이 무너지는데도 외환당국의 개입흔적은 포착되지 않았다. 현물시장, 선물시장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달러매수에 나섰던 1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 외환딜러는 “인위적으로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정부도 아는 듯하다”며 “과거식 전면개입에서 상황에 따른 선별개입으로 당국의 스탠스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지난달처럼 기대심리에 의해 환율이 과도하게 움직일 때는 개입을 통해 시장을 진정시키되, 달러약세(엔화강세) 같은 통제범위를 벗어난 대외적 요인에 의해 환율이 하락할 때는 대응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초점은 앞으로의 환율 향방이다. 일단 바닥에 도달했다는 시각이 있다. 4개월 만에 무려 9%나 절상된 이상, 이런 원고(高)행진이 계속되기는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사실 경상수지가 3개월 연속 적자가 확실시되는 만큼, 수급으로 봐도 원화절상압력은 해소되어야 마땅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930원 안팎의 공방을 예상했다.
하지만 원ㆍ달러환율은 더 내려갈 것이고, 결국은 900원 선도 위험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선 미국의 쌍둥이적자 해소를 위해 엔화와 위안화 절상을 통한 달러약세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신 플라자합의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실제로 미국의 금리인상행진은 폐막단계에 와있고, 작년말 달러당 8.07위안 이었던 위안화 환율은 현재 8.01위안까지 내려와 있으며, 엔화 환율 역시 111엔까지 떨어졌지만 100엔대 초반에서 움직였던 1년전에 비하면 내려갈 공간은 아직도 넓어 보인다.
전 세계가 달러약세를 묵인한다면, 원화의 추가절상은 피할 재간이 없다. 대우증권 정해근 상무는 “국제적으로 이렇게 간다면 800원대 진입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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