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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저질연탄과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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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저질연탄과 자동차

입력
2006.05.0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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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발생한 ‘저질연탄 사건’은 검찰에서 경제수사의 교훈적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당시 연탄은 서민생활의 필수품이었다. 그 해 9월 서울지검 특수 1부는 연탄에 저질탄을 섞어 부당이익을 챙겨온 연탄업자들을 적발했다. 관련 업자들과 뇌물을 받은 공무원이 줄줄이 구속됐다. 국민들은 검찰에 박수를 보냈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도 수사팀을 격려했다.

하지만 상황은 급반전됐다. 연탄 공급이 급감했고 값은 폭등했다. 정부 내에선 “경제의 ‘ㄱ’자도 모르는 검찰이 무식하게 수사를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태도가 돌변한 전 대통령은 “검사들에게 경제공부를 시키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검찰총장은 경질됐다. 서울지검장과 특수1부장은 좌천됐다.

저질연탄 사건이 경제를 잘 모르던 시절 검찰의 아픈 경험이었다면, 지난해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은 그 정반대의 경우다. 수사상 이유보다는 수사 외적인 요인을 너무 고려했다가 검찰이 욕을 먹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이 형제간 고발에서 비롯됐다는 이유로 총수 일가를 전원 불구속했다. 박용성 그룹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스포츠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감안됐다.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 구속은 검찰의 이 같은 사건처리 사례를 배경으로 깔고 보면 쉽게 이해된다. 검찰은 현대차 수사기간 내내 경제 걱정을 했다. 저질연탄 사건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정 회장 구속을 결정함으로써 두산 사건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정 회장의 구속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강했다. 경제계 일각에선 노골적으로 검찰을 ‘위협’했다. 경제가 잘못되면 검찰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식이었다. 검찰은 이 같은 압박에 막판까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네티즌의 반응 또한 의외였다. 원칙론과 현실론이 맞설 때 젊은 네티즌들은 대개 원칙론의 편에 선다. 젊을수록 현실보다는 이상을, 타협보다는 원칙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티즌의 다수가 정 회장의 구속을 반대했다.

혹자는 현대차의 동원(動員)의 결과일 것이라고 폄하했지만,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수년 간 청년 실업난이 계속되면서 젊은 층이 과거보다 훨씬 현실지향적이 된 것인지 모른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확산된 ‘저급한 애국주의’가 구속 반대론자들의 ‘국익론’과 쉽게 동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만일 이런 분석이 타당하다면 국가 장래를 위해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검찰의 결정은 무엇보다 원칙의 승리이다. 구속의 필요성이 있는데도 수사 외적인 고려로 불구속해선 안 된다는 법치주의의 대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이것은 형평성의 원칙이다. 이것은 형사법의 ‘불구속 수사 원칙’ 보다 근본적이다.

엊그제 일요일 아침 TV토론 주제는 여전히 현대차 사태와 관련된 것이었다.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논쟁은 여전히 팽팽하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면 어설픈 국익론이나 경제론으로 재벌의 비리와 부조리를 덮으려 해선 안 된다. 비용이 들더라도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 국익을 도모하는 길이다.

김상철 사회부 차장대우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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