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불효자입니다. 장가도 못갔는데 어떻게 효를 말할 수 있겠어요?”
민정기(71ㆍ서울 종로구 필운동) 할아버지는 ‘겸손한 노총각’이었다. 상수(上壽ㆍ100세)를 넘긴 아버지를 평생 모신 반포지효(反哺之孝)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훈장(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게 됐지만 “나보다 더한 효자 효녀가 천지인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는 7일 오전에도 어김없이 20평 남짓 되는 집을 비웠다. 서울대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버지(민병욱ㆍ103)를 만나고 왔어요. 자꾸 눈에 밟혀 견딜 수 있어야지.”
2003년 노환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업고 병원에 입원시킨 이래 하루도 조석 인사를 거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의식을 잃기 전까지는 세끼 공양도 직접 했다. “유기농으로 키운 쌀과 산나물 토마토가 전부지 뭐. 이젠 죽만 드시니, 걱정이에요.” 그는 방금 뵙고 온 아버지가 또 그리운지 아버지 사진을 품에 안았다.
아버지가 입원하기 전 부자가 오붓하게 살던 공간엔 40여년 전 작고한 어머니 영정과 아버지 사진이 가득했다. “평생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어머니 여의고 철이 들면서부턴 아버지를 모셨다”고 했다. 기력이 쇠해진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수발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도 어느덧 고희(古稀ㆍ70세)에 이른 지난해 밭에서 일하다가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이틀이나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걱정했지만 그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불효는 면했으니 다행”이라며 되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병석에서 거뜬히 일어난 뒤 ‘예전의 일’에 다시 매달리고 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할 때 회사까지 쫓아오셔서 결혼하라고 성화시더니 이젠 몸이 불편해 말도 못하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 지론은 아버지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나를 알라.” “죽으면 다 버리고 가니 베풀어라.” 명절 때마다 경로당에 쌀을 보내고 소년ㆍ소녀가장에겐 매달 15만원씩 학비를 지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집에는 그 흔한 TV도, 휴대전화도 없다. 유일한 소망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그만 장학재단을 만드는 일이다.
불효가 넘치는 요즘 세태를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요즘 아이들도 부모를 위한 마음은 다르지 않아요. 단지 방법이 다른 거지. 믿으세요. 제 아버지는 한시도 제게 욕을 한적이 없어요. 부모가 앞서면 자녀는 도리를 다해 따릅니다.”
그가 덧붙인 말이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훈장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오래오래 사는 게 남은 복입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어버이날인 8일 민씨를 비롯, 김치수 조용준(이상 목련장) 이원자 이도순(이상 석류장)씨 등 5명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고 전옥연씨 등 5명에 국민포장을 하는 등 효행자, 장한 어버이, 노인복지단체 등 총 218명(단체)을 포상한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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