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사립학교법 사태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한나라당이 재개정을 요구한 사립학교법 개혁안을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대승적 양보’ 압박까지 거부하면서 지켜낸 것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위해 인질로 사용했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법 등 긴급한 법안들을 한나라당의 극렬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 민주노동당 등의 도움 덕으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 사학법 대치 덕에 주민소환제 통과
그뿐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부동산대책법안 등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민주노동당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요구해온 주민소환법을 함께 직권 상정해 처리함으로써 주민소환제라는 덤까지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리 등에 연루된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의원들을 주민들이 소환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은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열린우리당도 미온적이어서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법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 덕으로 입법화됨으로써 한국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여는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덤은 이뿐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한국정치사에 길이 기록될 더 중요한 역사적인 덤을 선사했다. 그것은 진보 정당이 한국정치사상 처음으로 독자적인 법안을 입법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1950년대 조봉암이 주도했던 진보당은 제대로 활동도 못해 보고 이승만 정권에 의해 사법 살인을 당해야 했다. 4ㆍ19 이후 진보 정당들이 국회에 진출했지만 5ㆍ16군사정권에 의해 또다시 사망선고를 받고 말았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노회찬 의원이 43년 전 진보 정당을 살해한 김종필 전 자민련 명예총재를 의원직에서 밀어내고 마지막 의석을 차지하는 복수를 하며 제3당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다수당 중심의 국회시스템에 밀려 지난 2년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번 사태로 캐스팅 보트를 이용해 주민소환제를 관철함으로써 그동안 당의 목표로 내세우며 추구해온 ‘거대한 소수정당’의 면모를 처음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주목할 것은 만일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모든 것을 걸고 부동산대책법 등 주요 법안들과 5월 임시국회를 인질로 삼아 초강경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주민소환제와 민주노동당의 영향력 상승이라는 성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주민소환제의 도입과 민주노동당의 도약은 한나라당에 빚지고 있는 바가 매우 크다. 고마운 한나라당, 만 만세이다.
이 점에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를 “한국진보주의 정치사에 영원한 오명”이며 “민주노동당은 타락한 진보정당”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는 당내 냉전세력을 무마하기 위한 내부용 발언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실제로는 민주노동당의 선배격인 민중당출신의 이 의원이 아직도 진보정당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옛 동료를 도와주려는 고도의 전략적인 계산에서 사립학교 재개정의 강경대응을 주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하게 된다.
● 캐스팅 보트 쥔 진보정당 부상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또 있다. 노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이 뜬금없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 운운하며 열린우리당에 한나라당의 사립학교법 재개정 요구를 수용하는 자살골을 넣으라고 압박하지 않았다면 주민소환법 제정, 민주노동당의 부상과 같은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한나라당에 양보해달라는 노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한 만큼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요구를 수용하면서까지도 처리하고 싶어 한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대책법 등을 반드시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 같은 긴박감이 주민소환제 입법화라는 민주노동당의 요구를 수용하게 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사태는 역사란 그 주역들의 의도와 달리 엉뚱한 방식을 통해 전진한다는 ‘역사의 간계’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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