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한기(47ㆍ서울시립대 교수)씨는 수상 비평집 ‘구텐베르크 수사들’의 머리말에 책 제목의 연유를 밝히며 수행(修行)으로서의 글쓰기를 이야기했다. “인쇄 문명, 활자 문명의 시대에 문학, 혹은 글쓰기의 개념을 일종의 ‘수행’과 같은 개념으로 본다는 점에 나의 의식, 그리고 시각의 한 편모가 깃들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다듬는(修辭) 행위로서의 고독한 자기수행. 그는 그 문학의 수사(修士)들을 수상작의 중심에 놓고 있다. 조선 말과 한국어 문학의 내일이 보이지 않던 억압의 시대에 은자처럼 문학을 했던 황순원의 초기 문학을 두고 그는 ‘한국 순수문학의 정수’라고 서슴없이 밝힌다. 그리고 덧붙인다. “지금에도 역시 때 지난 구텐베르크 문화의 위엄을 회복시키기 위해, 되살리기 위해 ‘명멸하는 생명의 불꽃’을 태우고 있는 (황순원과 같은) 수도승의 문학자가 또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
그의 이 같은 인식의 배면에는, 저 중세의 어둡던 고행의 시간처럼 우리 문학이 처한 지금 이 시절의 아픔이 담겨 있다. “평단에 데뷔하던 80년대 후반, 저는 ‘문학 위기론’을 열심히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의 소외는 지금 갈수록 심해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재미없고 적막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문학에 대한 열정을 일깨우는 젊은 세대를 보면 감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문학의 위엄을 지켜가려고 노력해야지요.”
그리고 다시 수행으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했다. “죽으면서 자신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라고 했던 카프카처럼, 소설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실존의 양식이어야 합니다. 칸트의 정언 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무목적성의 목적성’이죠. 문학은 실존의 친구, 절집 말로 하자면 ‘도반’이 된다고 할까요.”
근년 들어 비평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듯하다고 하자 그는 활동영역이 좀 달랐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전공 영역이 한국 근대문학 연구이기도 하지만, 근년엔 비평사와 비평가 연구, 도시문화와 문화론 등 연구과제를 떠맡아 현장 평론의 일선에서 조금 멀어진 것 같습니다. 근년 평단이 문자 그대로 수사적(rhetorical) 비평의 관행으로 흐르면서, 저같이 어눌한 비평가의 쓸모가 적어진 것도 사실인 것 같고요.”
그는 데뷔 초기의 얼마간을 제외하면 중심 문단에서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고 자유롭게 비평을 해 온 편이다. “비평활동을 하면서 커다란 위기를 맛보곤 했습니다. 비평가(critic)란 위기(crisis)에 선 존재라고도 합니다만, 저 자신이 매번 비켜 서 있으면서 중심을 비판해야 한다는 사실이 저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근래 역사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말끝에, 그는 현실의 문제를 환기할 수 있는 역사 쓰기의 현장으로 자신을 데려가고 싶다고도 했고, 한국 근현대 비평사 논고(팔봉론을 포함해서)를 정리하고, 문화비평적 저술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라고도 말했다.
지난 해 말부터 미국 남가주대(USC) 방문교수로 나가 있는 그는 수상 소식을 전하자 “문학에 큰 빚을 지게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자기 혐오가 심하던 시절, 삶을 갱신하고 싶었”고 “삶이 누추해서 애비의 자식으로부터도 한꺼번에 도망치고 싶”었지만 “성(姓)까지 버릴 수는 없어” 어린 시절 살던 마을 이름에서 한 자(基)를 빌려와 필명을 쓰고 있다는 그다. 그는 이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필명에 ‘文’자 한 자쯤 더 집어넣어 좀더 문학적인 이름으로 삼았으면 싶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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