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심사 대상으로 제시된 비평집은 65권이었다. 그 중에서 시 평론집 4권, 소설 평론집 4권을 어렵사리 골라냈다. 논문집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제외하였고 문학보다 문학의 주변에 대하여 더 많이 언급한 책들을 제외하였다. 8권에 대하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문장의 정확성에 대하여, 그리고 논지의 일관성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다시 3권의 비평집이 선택되었다.
500쪽이 넘는 책이 두 권이나 있었다. 작품을 보는 눈도 침착하여 흔들림이 없었고 작품을 풀어내는 논지에도 새로운 시각이 들어 있었다. 심사 위원 모두가 세 권 중에 어느 것이라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을 뿐, 특별히 한 권을 선택하지 못하였다. 시론집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작품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평론 하나하나가 다 재미있게 짜여져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지적되었다. 시를 시로 보면서 시에 대한 감정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평론은 많지 않다는 것이 심사 위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현장 비평 속에 흐르는 시학적 안목이나 시사적 맥락이 제 그림을 더 그려나가도록 시간을 주고 다음 기회를 기다려 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두 권의 소설론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드시 어느 한 권을 추천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끝내 두 책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면 최근에 다른 상을 받은 적이 없는 분에게 상을 드리도록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구텐베르크 수사들’은 문예 미학에 근거하여 구체적인 작품에서 문학의 문학성을 찾아내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문학사의 맥락을 폭 넓게 추적한 평론집이다. 현대 사회에서 작가는 구텐베르크 수사의 위치에 있다는 이 책의 문제 의식은 황순원의 문학과 사상에서 그러한 탐구의 가장 높은 수준을 발견한다. 문학에 대한 사색의 넓이로 보나 문장에 대한 고심의 깊이로 보나 이 책의 저자 자신이 바로 구텐베르크 수사들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유종호 김윤식 김치수 김인환
■ 팔봉상 심사 경위
평론집 간행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16년 전 팔봉비평문학상을 처음 만들었을 때 20여 권 정도였던 연간 평론집 수가 지금은 70권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평론집 간행이 늘어나면서 우리 평단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 변화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
첫째, 평론집의 저자들이 바뀌었다. 평론집 간행의 대종을 이루던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거의 사라지고 한국문학 전공자들이 그 자리를 메웠으며, 간행자들의 연령 역시 30대와 40대들로 10년 이상 젊어졌다. 둘째, 평론집을 간행하는 출판사들이 훨씬 다변화되었다.'문지''창비''민음사''문학동네''실천문학' 등 권위 있는 문학 출판사에서 주로 간행되던 평론집들이 이제는 '역락''새미''소명' 등 한국 문학 관계 학술 서적을 출판하는 출판사에서 오히려 더 많이 간행되고 있다. 셋째, 평론집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비평적 성격과 학술적 성격을 뒤섞어 놓은 평론집들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현장 평론을 묶은 것이 평론집이라는 기왕의 관념을 위협하고 있다.
제 17회 팔봉비평문학상 심사는 평단의 이와 같은 변화 때문인지 비교적 명쾌하게 진행되던 이전 심사와는 달리 어딘가 여운과 망설임을 동반하면서 진행되었다. 심사 위원들은 1차예비 심사에서 구모룡 김경수 류보선 문흥술 방민호 유성호 최현식 한기를 본심에 올리는 데에는 쉽게 합의했다. 그러나 2차 본심은 1,2명의 대상자를 손쉽게 압축한 후 여유 있게 토론하던 종전과는 달리, 평론집의 비슷한 수준 때문에, 여러 사람을 두고 오랫동안 이야기가 이어졌다.
차례로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면 거의 결론이 나던 과거와는 달리 심사위원들은 시에 관해 가장 좋은 비평을 보여준 사람과, 소설에 관해 가장 수준 높은 비평을 보여준 사람과, 비평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글을 쓴 사람을 두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특히 소설에 대해 안정된 비평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평론집과, 구속 받지 않는 자유의 정신을 비평에서 구현하고 있는 평론집을 두고 심사 위원들은 토론과 침묵을 반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다음 심사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한기의 '구텐베르크의 수사들'을 수상작으로 정했을 때 마침내 무거운 짐을 부린 듯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홍정선(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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