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의 항구도시 빌바오는 분리주의 운동이 끊이지 않는 바스크주의 수도이자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철, 중공업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공업도시였다. 그러나 70년대부터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고,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잊혀졌다.
실업자와 환경오염만 남은 이 흉물스럽던 도시를 오늘날 유럽 최고의 문화도시로 부활시킨 주인공은 1997년 개관한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이다. 빌바오시와 바스크주는 건축문화를 통한 도시 .재생전략을 세우고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미술관 설계를 맡겼다. 소요예산은 약 1,000억원.
▦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은 티타늄판을 외장재로 사용한 데다 원통과 삼각뿔 등을 쌓아 만든 듯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해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살아 있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물’이란 찬사를 보냈다.
이런 유명세를 타고 개관 후 1년간 136만명이 방문하는 등 매년 100만명 이상이 미술관을 찾고 있으며, 빌바오로 하루 1회 운행하던 항공편은 4회로 늘려야 했다. 한 해 고용창출도 5,000명에 이른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 전체를 살린 것이다. 6년간 부가소득은 약 1조1,000억원.
▦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 청사 신축 경쟁이 한창이다. 인천 옹진군청은 351억원의 예산을 들여 연건평 5,000여평의 청사를 짓고 있다. 주민 수 1만4,000명, 재정자립도 20.4%의 이 가난한 군청의 1년 예산은 1,000억원 남짓하다.
서울시내 25개 구청 중 재정자립도가 22위 수준인 금천구청도 700억원 짜리를, 비슷한 수준의 관악구청도 815억원을 들여 10층 청사를 짓고 있다. 지난해 1,620억원을 들여 완공한 용인시 복합청사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보다 1,000평이 넓다. 호화 청사의 경제효과는 얼마나 될까?
▦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95년 지방자치 실시 이후 청사를 신축한 54개 지자체 가운데 공무원 한 명당 면적비율이 10평을 넘는 청사가 23곳이나 된다. 행자부 규정은 2.1평이다. 10평이 얼마나 넓은 공간인가.
현재 전국적으로 주거면적이 최저기준에 못 미치는 가구는 330만이 넘는다. 부부와 자녀 2명을 기준으로 한 최저면적은 11.2평에 불과하다. 또 전체 가구의 8%인 112만 가구는 단칸방에 산다.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이 달말 지방선거에서 이런 작태에 대해 추상같은 심판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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