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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노인들 "어버이날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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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노인들 "어버이날은 무슨…"

입력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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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어버이날이여, 빨리 죽는 게 상책이지.”

황금 연휴에 화창한 날씨까지 겹쳐 시끌벅적하던 7일 오후. 서울역 맞은편 용산구 후암동 쪽방촌에서 만난 두 노인은 세상과 등지는 날만 손꼽고 있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는 바람에 보살펴줄 자식을 두지도 못한 박경애(78) 할머니, 자식이 있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강선애(76ㆍ가명) 할머니다.

“손주들이 한창 클 땐 집에서 애들 봐주면서 같이 살았지.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걸 알고서는 얼마나 구박을 하던지….” 그래서 강 할머니는 13년 전 집을 나왔다. “피차 이게 편하지.” 동사무소에서 월 36만원의 생활비가 나오긴 하지만 0.5평 안팎의 쪽방에 월 20만원의 방값을 내고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길에 나앉지 않은 게 어디야.” 옆에 있던 박 할머니가 거든다.

같은 날 서울 영등포구의 한 쪽방촌. 쾌청한 봄 날씨에 길거리엔 한껏 멋을 낸 나들이객들로 활기가 넘치지만 샛길로 몇 발만 들어가면 어두운 분위기의 골목이 나온다. 이젠 도심에서 구경하기 힘든 연탄재와 짝을 맞추듯 소주병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거리 곳곳에는 이불이 어수선하게 쌓여 있었다. 더러는 그 이불 속에서 잠을 청한다. 갈 곳 없고, 보살핌 받을 수 없는 노인들이 몰려 사는 곳이다.

철길 밑 그늘에 앉아 소일한다는 김연우(59ㆍ가명)씨. 스물 두 살 때 집에서의 예기치 못한 추락 사고로 척추를 다녀 지체 2급 장애인이 된 뒤 결혼도 못 하고 이 곳으로 찾아 들었다고 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정부 지원금으로 담배와 술을 하며 소일하는 것이다.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구멍가게 주인은 “가게에는 소주와 맥주, 담배밖에 안 판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이 장애인이고, 그것도 수십년씩 장애를 달고 살면서 결혼은 꿈도 못 꿔본 사람들인데 이 동네서‘어버이날’ 운운하는 것은 이들에게 큰 실례가 된다”고 귀띔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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