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잉글랜드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이 1997년 집권 이후 최악의 참패를 기록해 토니 블레어 총리의 사임 여부가 정치권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5일 BBC 방송에 따르면 176개 지방의회 의원 4,360명을 새로 뽑는 4일 선거에서 173곳에 대한 집계 결과 노동당은 288석을 잃어 1,174석을 얻는데 그쳤다.
반면 보수당은 278석을 늘려 1,711석을 차지했다. 자유민주당도 17석을 추가했다. 반이민정책을 추구하는 극우정당 영국국민당은 수도 런던 동부의 백인 노동자층의 표를 얻어 15석을 얻었고, 녹색당도 18석을 더 챙겼다. 이번 선거 결과를 전국 규모로 환산하면 보수당의 정당 지지도는 40%로 차기 집권도 노릴 수 있게 됐다. 집권 노동당은 26%로 자유민주당(27%)에도 떨어지는 3당으로 전락했다.
이번 선거는 블레어 정부의 신임을 묻는 성격을 띤 만큼 노동당 참패에 대한 책임을 블레어 총리가 져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블레어 총리는 무력해진 리더십에 대한 당 내외의 비판을 조기 차단하기 위해 8일로 계획했던 개각을 5일로 앞당겨 실시했다. 외국인 범죄자를 국외추방 등의 조치 없이 바로 석방해 물의를 일으킨 찰스 클라크 내무장관의 후임에는 존 리드 국방장관이, 외무장관에는 잭 스트로 현 장관이 경질되고 마거릿 베켓(사진) 환경ㆍ식품ㆍ농촌장관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외무장관에 오르게 된다. 젊은 여비서과 섹스 스캔들로 노동당을 추락시킨 존 프레스콧 부총리는 유임됐지만 커뮤니티와 지방정부 영역을 루스 켈리 신임 지방 정부 장관에게 넘겨주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정치 분석가들은 블레어 총리가 데스 브라운 신임 국방장관 등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계열 사람들을 일부 중용함으로써 총리직 이양에 대한 반발 여론을 무마하는 한편 총리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 등은 블레어 총리가 사임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혹은 차기 총리 후보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권력을 넘기라는 거센 압력을 계속 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뒤 2010년 실시될 다음 총선 이전에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BBC 방송이 선거 당일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50%는 당장 혹은 올해 안에 블레어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의 패배는 예견된 것이었다. 블레어 총리의 대가성 정치자금 스캔들, 내무부의 외국인범죄 관리 소홀, 프레스콧 부총리의 혼외 정사 고백 등이 줄줄이 터지며 지지율은 87년 총선 패배 이후 최저인 32%까지 추락한 상태였다.
보수당의 젊은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은 취임 이후 데뷔전이나 다름없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런던의 크로이든 등 주요 지역을 차지하는 등 성공을 거둬 당내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됐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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