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결혼기념일은 저녁에 축하합시다. 오늘을 기다렸을 아이들에게 멋진 비행 모습을 보여주고 돌아오겠소.”
아마도 고 김도현 대위는 5일 아침 이런 말을 부인에게 남기고 집을 나섰을지 모른다. 3세 4세인 두 아들은 서툰 발음으로 “우리도 어린이”라고 보채다가 이내 체념하고 “아빠, 빨리 와” 하며 손을 흔들었을지 모른다. 그 길이 마지막 길이 될 줄 알았더라면 엄마와 아이들은 아빠를 그렇게 쉬이 보내진 않았으리라.
추락 과정에서 관람석 쪽을 피하기 위해 탈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김 대위. 그는 지난해 2월 소원이던 블랙이글팀에 배속된 베테랑 보라매였다. 공사 44기로 1996년 임관, 비행시간 950여 시간.
그에게 블랙이글은 어떤 의미였을까. “언젠가는 블랙이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막상 제안이 왔을 땐 다리를 다친 상태여서 절망적이었습니다. 5~6개월 간 비행도 못했지만 블랙이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블랙이글은 나를 기다려줬고 인생의 전화위복을 맞게 됐습니다.” 생전 김 대위가 블랙이글을 취재했던 한 작가에게 남긴 말이다.
그는 생도 시절 가입교 예비생도 훈련대대장, 전대장생도, 동기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임관 시 종합성적 4위로 합참의장상을 받기도 했다. 공사 동기인 김명근 대위는 “동기들이 ‘참모총장감’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특히 김 대위는 임관 전 신체검사에서 비염이 발견돼 조종사의 길이 힘들어지자 “공사 나와 비행을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다”며 쉽게 포기하지 않고 수술을 결정할 정도로 비행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마라톤을 5번이나 완주한 뛰어난 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블랙이글 홈페이지에 남겨진 그의 비행신조는 ‘비행은 항상 겸손하게’다.
영결식은 8일 오후 3시 강원 원주시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엄수된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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