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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그 게이샤들도 '풀뿌리 식민 지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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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그 게이샤들도 '풀뿌리 식민 지배자'였다

입력
2006.05.0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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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조선 경제가 병합 이후 30년 만에 일대 발전을 이룩한 것은 분명 일본이 지도한 결과”(경성제국대학 교수 스즈키 다케오)“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아카시아 꽃 향기 나는 경성 거리에서 살 것이다. 남산 기슭의 삼판소학교에서….”(경성삼판소학교기념문집 중) “총독부 자료를 읽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생활이 바로 침략이었다.”(조선에서 여학교를 다닌 모리자키 가즈에)

식민지 조선에는 군인, 상인, 하릴없는 깡패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랑자, 유곽의 게이샤, 창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의 일본인들이 살았다. 그들 가운데는 착취에 앞장선 이도 있지만 봉사에 헌신한 이도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기억도 자부에서 자괴까지 가지가지다. 식민지 생활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다양하고, 친일파 독립운동가 무지렁이가 공존했듯이 말이다.

일본의 조선(일본에서는 남북한을 통틀어 탈정치적 성격의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사 연구자인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는 총독부, 군대, 경찰이라는 식민 권력기구에 직접 협력하거나 혹은 기생해, 직간접적으로 식민지 지배구조의 착근에 힘을 보탠 조선의 일본인들을 더듬어간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의한 개항에서 1948년 귀환 완료 때까지 이들이 일제의 조선 정책 등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거꾸로 그것이 당시 우리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살펴본다. 일본에서는 ‘굳이 들출 필요가 있느냐’고, 한국에서는 ‘일본사 아니냐’며 외면하는, 인기 없고 돈도 안 되는 연구 분야다. 기존의 학문적 성과도 별로 없다.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의 조선인, 해방 이후 일본에서의 재일동포의 삶처럼.

저자는 “일본의 조선 침략은 군인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고 한다. 오히려 이름 모를 숱한 일본 민간인들의 ‘풀뿌리 침략’‘풀뿌리 식민 지배’를 통해 유지되고 지탱됐다고 얘기한다. 식민 지배는 정치가와 군인들이 주도했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와 살면서 식민 지배가 한층‘강인’해지는 근거가 됐다는 것이다.

“가장 급한 일은 두 가지다. 부산 한성 의주를 잇는 철도를 놓는 것과 중요한 지점에 방인(邦人ㆍ일본인)을 이식하는 일이다.”(1894년 일본 육군 야마가타 아리토모 대장) “조선에서는 내지인(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선 통치의 책임 분담자라고 생각하여 일시동인(一視同人) 내선융화(內鮮融和)의 성지를 받들었다.”(1918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원 이노마타 세이이치)

저자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웃은 불이흥업 사장 딸의 말을 보자. 불이흥업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보다 교묘하게 ‘개척’등의 이름으로 우리 땅을 빼앗은 회사다.“조선에서는 잡곡의 주식화가 보통이죠. 조선인은 쌀보다 잡곡을 좋아해요. 일본이 착취를 한 것처럼 하는 건 실정을 조금도 모르는 탁상공론의 무서움이죠.” 식량공출로 귀한 쌀을 일본에 보내고 질 낮은 잡곡을 수입해 먹어야 했던 조선인의 처지에 대해서는 깜깜하고, 일본의 지배가 ‘낙후 정체된’ 조선을 도왔다고 믿었던 게 일반적인 조선 거주 일본인의 모습이다. ‘여보’가 조선인을 차별하는 용어로 쓰였다는 증언도 새롭다.

다만 개개인의 구체적 삶이 생생하게 드러나기보단 자료 제시식으로 흐지부지 얼버무리는 느낌도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최종 목적은 우리가 조부모와 부모의 체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잘못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담보를 얻는 것에 있다.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할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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