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나 늑대인간 혹은 흡혈귀 이야기에 오금 저려하면서도 빨려 들어가는, 두려우면서도 ‘더 겁에 질리고 싶고, 더 떨고 싶고, 더 깊은 어둠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마음은 어릴적 누구나 했던 경험이다.
요즘 책들처럼 휘황찬란한 판타지는 없지만 유령이 출몰하는 어둠의 세계를 사랑과 우정이라는 정곡법으로 공략한 영국 작가 데이비드 알몬드의 두번째 작품 ‘푸른 황무지’(김연수 옮김, 비룡소, 9,500원). 해리포터의 고향 영국에서 조앤 롤링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이 작가의 잔잔하고 따스한 감성은 우리 정서에 친숙하다. 거기에다 소설가 김연수의 유려한 번역으로 맛깔스러움을 더했다.
퇴락한 광산마을로 이사를 온 13살 소년 키트는 음울해 보이는 에스큐라는 아이를 만난다. 주정뱅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반항기 가득한 에스큐 패거리들과 버려진 광산 동굴에서 ‘죽음’을 체험하는 데드 게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위험한 게임이 들통나면서 에스큐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결국 가출해 유령이 출몰하는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다. “마음의 선한 한편에 금이 가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중요한 건 그걸 깨닫고 햇살 속에 그 상처를 보여주는 일이지.”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키트는 에스큐를 찾아 나선다.
이 소설에서 유령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무늬만 유령’일뿐이고, 정작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위험한 게임을 즐기고 스스로를 침잠시키는 에스큐의 존재다. 하지만 에스큐도 결국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던 아이였을 뿐. 어둠 속으로 들어가 친구를 빛의 세계로 올라오도록 돕는 키트의 우정으로 인하여 악몽이 꿈과 마술로 바뀐다는 이야기는 고전적이면서도 매혹적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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