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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MK와 '현대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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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MK와 '현대속도'

입력
2006.05.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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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럭비선수였다. 건장한 체구였던 정 회장은 당시 학교 럭비팀에서 후커(Hooker)를 맡았다.

후커는 스크럼의 제1열째 중간에 위치하는 플레이어로 스크럼 안으로 투입된 볼을 재빨리 탈취해야 한다. 다리가 길었던 그는 볼을 잡자마자 포워드로 변신해 재빨리 트라이(공격 측 플레이어가 상대편 지역에 최초로 볼을 그라운딩 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득점)를 시켜 모교를 승리로 이끌곤 했다.

학교 시절 그의 별명은 시베리아였다. 빠른데다 힘이 장사여서 상대방 럭비선수 두명쯤은 거뜬히 힘으로 밀어 붙였다고 한다.

정 회장의 별명은 시베리아 외에도 많다. 대표적인 게 불도저 총수다. 특유의 뚝심으로 각종 사업을 밀어 붙여온 그는 힘들다고 주저하는 임원들에게 “당신 해 봤어?”란 말을 자주하곤 했다. 한 자리 수 매출 증가율을 제시한 임원의 결재요청 서류엔 이의 2~3배를 달성할 것을 지시하는 사인을 해서 내려 보냈다. 앞만보고 달리는 그의 공격경영은 럭비선수 시절 후커역할과 비슷하다.

그의 한남동 자택에는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란 표구가 걸려 있다.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라는 의미다. 그는 근면과 성실을 강조한 선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을 본받아 새벽 6시30분이면 어김없이 양재동 사옥으로 출근한다.

2000년 현대그룹에서 분리한 후 6년 만에 현대ㆍ기아차그룹을 재계2위, 세계 6위의 자동차업체로 일군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 등으로 서울 구치소의 한평 남짓한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한 지 일주일가량 됐다.

그 경위야 어쨌든 ‘검은돈’을 조성한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문제가 된 정의선 사장의 경영권 승계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배구조도 정 회장 중심의 ‘원맨 경영’에서 계열사 자율경영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선진업체들과 사활을 건 자동차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장수’를 구속까지 하면서 수사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현대ㆍ기아차그룹은 2010년 세계5대 메이커(국내외 500만대 생산목표)로 도약하기 위해 미국 중국 등지에 공장을 짓고 있다.

중국에선 2002년 10월 베이징공장 착공 후 2개월 만에 EF쏘나타를 생산, 판매하는 등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면서 현지에선 ‘현대속도’란 말이 유행이다.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경영을 지휘해 온 정 회장이 갇힌 신세가 되면서 자동차 수출은 물론 해외투자가 지연되는 등 그룹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차가 추격 중인 일본 도요타는 지난해 현대차의 10배가 넘는 11조원가량의 순이익을 내고, 미국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2010년을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강조해 온 정 회장은 “자동차산업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전쟁터로 민관이 똘똘 뭉쳐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만간 이건희 삼성 회장도 소환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투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의 엄정한 잣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비자금을 요구하는 정치, 사회적 환경은 개선해 주지 않으면서, 국부창출에 힘쓰는 재계 1~2위 총수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의춘 산업부장직대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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