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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들 진입 문학출판 시장 지각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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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들 진입 문학출판 시장 지각변동

입력
2006.05.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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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純)문학 출판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진입 장벽이 높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던 이 시장에, 최근 자본력과 영업력 조직력 등을 앞세운 몇몇 대형 출판사들이 거센 기세로 진입해 기존 문학출판 강자들의 장악력 와해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수년 내에 문학출판계 시장 구도가 바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의 공세

이 같은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랜덤하우스중앙’이 있다. 미국의 다국적 출판ㆍ미디어 그룹 랜덤하우스와 중앙M&B가 2004년 합작해 출범한 랜덤하우스중앙은 지난 해 초 계간지 ‘문예중앙’의 편집 진용을 젊은 문화비평가들로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단행본 출간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소설의 경우 최근까지 20명 내외의,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들과 출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랜덤하우스중앙·웅진씽크빅 등 선두로… "차세대 중심 전력" 장기적 투자 시작

기성작가 확보에 신인들과도 잇단 계약… "기회 확대" "문화 체질 약화" 문단 술렁

아동출판의 강자인 ‘웅진씽크빅’(모기업)의 단행본 사업본부도 지난 해 11월 ‘랜덤하우스중앙’의 원년 사령탑이던 최봉수씨를 대표이사로 영입, 문학출판 시장 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 대표는 “문학이 그룹 출판 매출의 차세대 중심 전력이 되도록 하기 위해 향후 최소 3년간은 성과에 관계없이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당 팀이 기성ㆍ신인 작가와의 접촉을 시작했고, 해외문학 번역 출판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문학시장의 실지(失地) 회복을 위해 신진 작가와의 연쇄 계약 등 의욕을 보여온 민음사도 최근 박상순 사장의 퇴진으로 주춤한 상태지만,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긴장하는 기존 출판계

기존 출판사들이 소위 ‘작품도 되고, 돈도 되는’ 협소한 작가군을 분점해 온 순문학 출판 시장 구도에 강력한 출판 수요가 창출되면서 출판계는 난 데 없는 ‘작가 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가뜩이나 작가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중소 문학 출판사들은 물론, 소위 메이저출판사로 꼽히는 곳들도 긴장하는 눈치다.

작가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한 출판사의 관계자는 “출판 계약 제의를 하면 수상 경력도 없고 지명도도 그리 높지않은 등단 3~5년차 작가들도 최근 계약을 했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연초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인 작가나 발표작이 단편소설 한 두 편에 불과한 작가들조차 출판 계약을 맺은 예가 드물지 않다. 첫 작품집을 출간하려면 등단후 5~ 8년씩 걸리던 10여년 전과 사뭇 대비되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문예중앙’관계자는 “처음 두어 번 다른 출판사들보다 많다면 많은 계약금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는 편집ㆍ기획위원들이 판단해 좋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만나 출판계약을 추진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웅진씽크빅 단행본 사업본부 관계자는 “오히려 작가와 출판사간 인연으로 엮여있는 기존 시장 구도와 여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 시장에 미칠 영향은

이 같은 변화가 사뭇 위축된 문학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인 것은 사실이다. 기존의 과점적 문학출판 시장을 와해할 수도 있고, 기왕의 완고한 출판 구도 하에서 덜 주목 받은 작가에게 출간의 기회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독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폭 넓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문학의 체질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책을 쉽게 내게 되면서 설익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엄연하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는 “비평의 관점을 무시한 문학 출판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짓”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최근 검증되지 않은 작가에게 그 막연한 가능성만을 보고 출판 계약을 제의하는 사례가 흔해지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는 소비자들의 실망을 자초해 가뜩이나 인색한 문학 소비자들이 아예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책 내는 게 어렵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려울수록 자신의 문학을 고민하고 작품을 다듬는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80년대 중반에 등단한 한 작가는 “당시 등단하고 첫 책을 내기까지의 힘들고 긴 기간이 직업 작가로 거듭나는 참다운 습작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며 “요즘은 책으로 습작하는 시대가 되어 문학이 인스턴트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기존 문학 출판사들 관행 성토

기존 문학 출판사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문학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검증된 작가에게 줄을 서서 번갈아가며 원고를 받아 책을 내는 안일한 관행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가, 상대적으로 신인 작가들의 발굴 및 육성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나, 빈곤한 기획력의 타개 방안은 있는가 등등. 근각출판사마다 경쟁적으로 내고 있는 앤솔러지(Anthology·품집) 사태가 그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다. 창비의‘20세기 한국소설’ 문학과지성의‘한국문학 전집’, 민음사의‘오늘의 작가 총서’ 발간재개, 문이당의‘청소년문고’…. 작가도부족하고 마땅한 기획도 없으니 커지는 논술시장이나 겨냥하자는, 안이하고 뻔한 계산이라는 것이다.

앤솔러지는 필요하고, 좋은 앤솔러지는 중요하다. 독일의 유명한 출판사인‘주어캄프’를 먹여살리는 것이 헤르만 헤세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매년 3, 4권의 헤세 앤솔러지가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주어캄프의 헤세 앤솔러지가 그 긴 세월동안 시장에 통하고 신뢰를 쌓아온 것은 그들의 돋보이는 기획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널리스트를 위한 헤세 읽기’‘힙합적으로 헤세 읽기’ 등등…. 그것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우리 문학 출판계에도 회사별 특징과 특기, 대표 브랜드가 절실해지고 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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