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개편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불행히도 이번 역시 현대자동차의 부실채권 처리과정에서 간부들이 금품을 수수한 비리사건이 불씨가 됐다. 2002년 벤처기업 대출비리와 2003년 대북 불법송금사건 등 산은이 개입된 금융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위상이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개편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더 근본적인 요인은 산은의 정체성 상실이다. 개발시대 산업자금을 공급한다는 존재 이유가 시대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돈을 쌓아두고 있는 형편이니 정책자금의 필요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은측은 “외환위기의 경우 산은이 아니었으면 누가 회사채를 인수했겠느냐”며 “통일을 대비한 북한 지원 등 정책금융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유있는 반론이지만 정책금융은 시중은행을 통해서도 집행할 수 있다.
정책금융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회사채 인수, M&A 자문, 프로젝트 파이낸싱, 심지어 보험과 펀드 판매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정부의 힘으로 민간 영역을 침해한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거대한 시중은행에게도 힘겨운 투자은행(IB) 역할을 국책은행이 해낼 수 있으며, 해야 하느냐는 회의론도 상당하다.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부실기업 인수로 조직은 커질 대로 커진 기형적 모습이 산은의 현주소다. 최근에는 간부들이 '산은이 망하는 시나리오'라는 자극적 제목으로 워크숍을 할 정도로 내부 위기감도 높다.
그런데도 개편작업이 매번 구호로만 그치는 것은 내부의 거부감과 함께 정부가 금융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산은을 놓지 않으려 하는 속사정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산은이 개편안에 대한 외부용역을 맡긴 상태이고, 재정경제부도 이를 약속한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분명한 개혁안이 나와야 한다. 그 방향은 폐지보다는 점진적 민영화와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기능이 유사한 다른 국책은행과의 통폐합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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