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미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국방부가 4일 새벽 공병과 일부 경계 병력을 포함한 공권력을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대에 투입할 것으로 알려진 3일 대추리에는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속속 집결하는 등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추리는 전쟁 전야
국방부는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범대위)와 지난달 30일 및 이달 1일 2차례 실무대화를 가졌지만 범대위가 '기지이전 원점 재검토' 등을 주장하며 사실상 대화를 거부했다고 판단, 물리력 동원을 결정했다.
지난 2차례의 영농차단 작전과 달리 이번에는 기지 이전 부지에 철조망을 설치하기 위해 공병과 일부 경계 병력까지 투입할 계획이다.
기지이전 반대집회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대추분교를 강제철거하기 위해 대규모 용역인력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주민 및 범대위와의 충돌에 대비, 전경 5,000여명의 배치도 경찰에 요청해 놓았다.
이에 맞서 주민들과 범대위 500여명은 3일 밤 10시 대추분교에서 집회를 가졌다.
범대위는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대화 중단을 선언하고 강제집행 실시를 선포함에 따라 군대 투입이 임박했다"며 "군경을 야간에 투입하면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보상이나 더 받으려는 게 아니다"며 "온 몸으로 군경을 막아내기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범대위는 국방부가 4일 새벽 기습 작전을 펼칠 것으로 보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범대위가 "대추리를 지켜달라"며 전국 시민ㆍ사회단체에 '긴급구조'를 요청하면서 시민단체 회원들도 대추리로 속속 집결하고 있다.
범대위와 주민들은 대추분교 정문을 걸어 잠그고 농기계로 바리케이드를 친 채 공권력 투입에 대비했다. 범대위 관계자는 "대추리와 도두리로 진입하는 길목을 경운기와 트랙터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농기구로 차단하고 인간 띠로 공권력의 접근을 막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분 쌓기로 끝난 양측 대화
국방부와 범대위는 2차례의 실무대화에서 끝내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국방부는 "기지이전 부지에 대한 토지측량 등 공사활동을 방해하지 않을 경우 철조망 설치를 포함한 행정대집행을 중단하겠다고 양보했지만 범대위는 장관 출석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했다"고 범대위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범대위는 "국방부가 행정대집행 등을 실행하기 위해 기만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더 이상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정부는 1일 한명숙 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회의를 가졌지만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원론적 처방 외에 특단의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국방부의 '기습작전' 결정에는 "안보와 관련한 국책사업에는 공권력의 권위를 더 세워야 한다"는 정부 고위층의 압박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평택=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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