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무기다 에너지가 국가경제 및 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에너지의 국가통제 경향이 뚜렷해졌다. 1970년대 오일쇼크에서 영향력이 확인된 '자원의 무기화'가 국제외교의 화두로 재등장한 셈이다. 러시아, 베네수엘라에 이어 볼리비아가 에너지 부문을 국유화하거나 국가통제를 강화했다. 세계의 에너지 확보전에 대응하는 이런 양상은 다른 광물 자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영기업이 원유, 천연가스 등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국유화한 러시아는 에너지 패권국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부터 유럽과 에너지 문제로 갈등을 빚은 러시아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오히려 유럽연합(EU)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의 영국계 동종기업 센트리카 인수에 EU가 제동을 걸자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너지 공급선을 한국 등 아시아로 돌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은 천연가스의 25%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남미의 국유화 바람은 가난한 자원 부국들이 국부가 다국적 기업에 유출되고 있다는 각성에서 출발했다. 볼리비아는 베네수엘라와 같은 방식으로 에너지 부문은 물론 광산과 임업까지 국유화를 단행했다. 에콰도르도 외국 정유사가 수익의 50%를 내놓지 않으면 공급을 중단하겠다며 가세했다.
에너지 국유화 바람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국내정세가 복잡한 아프리카의 수단, 차드, 콩고공화국이나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 등 과거 주변부 국가들은 에너지를 무기 삼아 강대국과 다국적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목소리가 커진 에너지 수출국에 대해 대량 소비국들은 관계증진 외에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볼리비아의 에너지 국유화로 현지 진출한 자국기업이 피해를 입자 비상각의까지 소집하며 격앙됐던 브라질은 "볼리비아산 천연가스의 안정적 공급에 합의했다"고 꼬리를 내렸다.
앞서 베네수엘라의 국유화 조치 때 국제유가가 급등했듯 에너지의 무기화는 시장 불안을 키워 유가를 급등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에너지는 안보문제 미국은 9ㆍ11테러와 이라크전을 거치면서 에너지 문제를 국가안보에 직결시키고 있다. 에너지 수급 차원을 넘어 에너지의 높은 대외의존도가 안보에 치명적이라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현재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의 석유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중 60%를 수입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 미국의 에너지 대외의존이 ‘석유 중독증’수준이라면서 2025년까지 중동 산 석유수입을 75%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중동정세의 불안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발상이다. 대외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으로 부시 대통령은 미국 내 에너지원을 ‘무제한적으로’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강도는 거의 ‘에너지 자급자족’추진에 가깝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국제안보 전문가 제임스 울시는 2일 “사우디아라비아에 테러가 발생하면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로 치솟을 것”이라고 대외의존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대외의존을 줄여야 과격 이슬람단체에 자금이 덜 흘러간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환경론자들을 의식, 미국의 국산 에너지원으로 에탄올 등 대안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제시했다. 옥수수 등에서 추출하는 에탄올의 경제성은 논란도 있으나 부시 대통령은 6년 이내에 상용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미 전역의 에탄올 공장은 현재 95개 이나 190여개가 새로 지어지거나 계획 단계에 있다. 에너지 절약형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도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의 증설에 대해서도 부시 행정부는 노골적이다.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미국에서는 원전이 추가로 건설되지 않았으나 부시 행정부는 2005년 에너지정책법을 통해 원전 건설에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했다. 에너지부는 “원자력 발전은 최우선 순위 정책”이라고 밝히고 있고,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는 일부 환경론자도 원전을 용인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알래스카 야생보호구역내 유전 개발은 지난해말 관련 법안이 상원에서 부결돼 한때 좌초하는 듯 했으나 최근 고유가로 다시 현안으로 부상했다.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은 강력히 밀어붙일 태세이고, 미 의회조사국(CRS)도 알래스카 유전개발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개발쪽에 가세했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 中·美, 阿원유 확보 경쟁 아프리카는 곪아간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의 원유 확보 전쟁은 아프리카 국가의 분쟁을 부추기고 비민주적 정권을 강화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전세계 원유의 10%를 생산하는 아프리카를 향한 중국의 구애는 지역 정세의 불안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나이지리아를 찾아 27억 달러 어치의 유전 지분을 확보하자 나이지리아 반군은 중국측 유전지대에 대한 공격을 공언, 정정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포린 폴리시 최근호(5,6월호)는 수단의 수출 원유 중 절반을 수입하는 중국이 다르푸르 인종 학살에 눈을 감으면서 유엔 안보리의 제재에 반대하는 것도 중국의 자원 외교 탓으로 돌렸다. 특히 중국은 대만과의 외교경쟁 등을 의식,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비산유국들에게도 원조 외교를 펼쳐 지역 독재 국가들의 버팀목이 되다는 지적도 함께 받는다.
미국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5년째 독재정치를 해온 적도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대통령을 좋은 친구로 호칭, 민주주의 확대라는 원칙보다 원유를 중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을 줄이고 아프리카산 원유을 확대하겠다는 미국이 앞으로 펼칠 대 아프리카 외교의 방향을 가늠케 한다.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무대로 진행되는 미ㆍ중 간 자원 경쟁은 에너지 뿐 아니라 국제안보 환경도 훼손할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은 후 주석의 2004년과 지난달 아프리카 방문을 통해 케냐의 석유탐사권, 이집트 가봉 알제리등지에서 원유개발 협력사업권 등을 잇따라 따내면서 아프리카 원유를 빨아들이고 있으나 “세계인구의 5%인 미국이 세계 원유의 25%를 사용하고 세계인구의 22%인 중국은 고작 6%의 원유만을 소비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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