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불황을 떨치고 봄과 함께 어깨를 추스르던 경제가 뜻밖의 복병을 만나 다시 주저앉게 생겼다. 늦봄에 들이닥친 이 불청객들은 나라 안팎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남으로써 시장과 기업을 불안과 혼돈에 빠뜨리고 나라 경제를 짙은 황사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불확실하고 위험한 황사 국면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방향감각부터 제대로 찾아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의 좌표는 여러 낙관적 요소들을 두루 반영한다 해도 오랜 불황 끝의 첫 회복단계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회복기의 경제가 빠지기 쉬운 함정 가운데 하나는 경제지표의 과신이다.
회복기의 경제지표는 추세 판단 자료로는 유용하나 상대적으로 변화를 과장할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경기변동의 초입에서 과격한 정책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많은 경우 부작용을 수반하기 쉽다. 투자와 소비 마인드가 되살아난다면 오히려 투자환경을 더 개선하고 규제개혁을 더 촉진하여 경기회복을 추세화ㆍ정착화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다.
그러나 최근 돌출되고 있는 내ㆍ외생 변수들 가운데는 모처럼의 경기회복 기운을 흩뜨릴 수도 있는 요소들이 엿보인다. 가장 심각한 요소는 역시 유가 폭등이다.
여러 전문적 분석을 종합해도 유가의 파괴력이 가까운 시일 안에 감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올해 세계경제의 최대변수로 남을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는 곧 거의 모든 경제전망과 계획의 전면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유가 폭등은 인플레와 교역조건 악화, 소비 둔화로 이어져 하반기 이후 경기를 도로 주저앉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IMF는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최근 5.5%로 수정 예측했지만, 5% 달성조차도 우려하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가 100달러 시대는 이제 분명한 가시권 안으로 근접했지만 문제는 우리들의 터무니없는 에너지 불감증이다. 에너지를 국가적 의제로 시급히 격상시켜야 할 최적의 시점이다.
환율 하락도 회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최근 5년간 36%나 절상된 환율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는 흔치 않을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영난은 심각한 상황이다. 유일한 견인력이던 수출이 저환율로 정체되어도 내수가 대체할 수 없어 달러 약세가 지속되는 한 하반기 이후 내년의 경기 재하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견된다. 유가, 환율, 금리가 동시에 경기 방향과 역진할 때 나타날 현상은 아무래도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생산량의 75%를 수출하고 우리나라 수출액의 10%대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 회장이 구속돼 기업환경도 급격히 경화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경영을 통해 전세계 곳곳에 생산기지와 넓은 판매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번 일은 국내외에 걸쳐있는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와 기업 신인도에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다.
경제계와 협력업체 그리고 근로자들의 선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인신구속으로 이어져 안타깝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불투명 경영이나 부당 회계처리, 불법 또는 편법적 경영권 승계는 바로 잡아야 할 것이지만, 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법 집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라가 온통 선거판으로 휩쓸리는 쏠림 현상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민생과 국정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국회와 정부, 기업과 소비자 모두 제자리를 제대로 지켜야 이 험난하고 위험한 황사 국면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조건호ㆍ전경련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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