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이 격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대그룹이 2일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상선 지분 26.68% 기습 매입과 관련, “진정한 백기사라면 취득 지분의 10%를 우리 그룹에 즉시 매각하라”며 공세에 나섰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이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천명, 양측의 분쟁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2003년말~2004년초 시숙부인 정상영 명예회장의 KCC와 경영권 다툼 이후 2년 만에 또다시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과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사실상 ‘시동생의 난’이 현실화한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분매입 의도를 의심해온 현대그룹측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현대그룹 전인백 기획총괄본부 사장은 이날 서울 적선동 현대상선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중공업그룹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전 사장은 지분 10% 매각 요구의 근거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17.2%) 등 우호지분을 포함해 현대상선의 내부 지분율은 35%수준이므로, 현대중공업그룹이 매입 지분의 10%를 팔고 16%만 보유해도 (중공업측 주장대로) 우호지분이 과반수를 넘게 돼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전 사장은 또 “현대중공업그룹은 현재 추진중인 현대상선 유상증자 참여를 포기하고, 추가지분 매입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 회장은 이와 관련, 각계 인사들과 연쇄 접촉해 시동생의 ‘경영권 장악 시도’의 부도덕성을 집중 부각하는 등 우군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상선에 대한 적대적 M&A는 물론, 경영권 행사 의사가 전혀 없다”고 재차 밝히면서도, “불과 수일 전에 투자를 결정한 상태이므로 지분을 매각하라는 제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현대중공업측은 “그러나 주주이익 극대화 원칙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지분매각을) 고려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유상증자 참여 여부는 이사회의 결의가 요구되는 사안인 만큼 이사회를 소집해 토론과 협의를 거친 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 사실상 현대그룹의 요구를 거부했다. 현대중공업측은 이날 늦게 현대상선 지분 인수 배경 등에 대해 추가로 상세히 공개하면서 ‘순수투자’였음을 아울러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경영권 위협을 느끼고 있는 현대그룹측이 앞으로 케이프 포춘 등 외국계 우호지분을 늘려 정면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급할 것이 없는 현대중공업측은 맞대응 보다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이달 말로 예정된 현대상선 유상증자 참여 등을 통해 자체 행보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 현대그룹 전인백 "우리요구 거부땐 거짓말 인정하는 격"
현대그룹 기획총괄본부 전인백 사장은 2일 “현대중공업그룹이 백기사를 자처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스스로 거짓말을 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대중공업측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만약 수용하지 않으면 우리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다 하겠다. 구체적인 방법은 전략상 이 자리에서 언급할 수 없다.”
-현대상선 지분을 다시 매입하면 현대건설 인수계획에 차질이 예상되는데.
“현대건설 인수는 현대상선이 중심이 돼서 할 것이며, 상선 지분매입은 현대엘리베이터 등 우호기업에서 하면 된다.”
-현정은 회장이 정몽준 의원, 정상영 KCC 명예회장 등과 만날 계획이 있나.
“현대중공업에 우리의 요구를 문서로 요청했기에 실무진 차원에서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가 내부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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