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재개정 문제로 대치하던 국회가 그 와중에 지방자치 선출직의 주민소환법까지 제정하는 파행상을 빚었다. 지자제의 주민소환 시스템은 여야가 충분히 논의를 거쳐야 할 중대 사안인데도 이해다툼과 표결 거래의 산물로 갑자기 법제화했다.
여야의 정치력이 빈곤한 사정도 딱하지만, 그 결과로 의정 운영이 이렇게 얼렁뚱땅 이루어지고 중요한 제도가 얼떨결에 도입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열린우리당은 소수 야당들을 끌어들여 부동산 법안등 민생 법안들을 처리하면서 한나라당측과 욕설 몸싸움 등의 물리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다.
민생 법안 통과가 다행인 면도 없지 않으나 이것만이 전부라고 하기에는 전후 사정이 그렇지 않다. 법안 처리 주도 과정을 보면 열린우리당의 처신은 여당이라고 하기에는 목적과 수단에서 위험하고 모험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사학법 재개정을 당부한 대통령의 권고를 하루도 안 돼 묵살한 것부터가 집권 책임을 가진 여당이 취할 바가 아니었다. 나머지 법안 처리를 위해 다른 야당들의 힘이 필요했다고 해서 주민소환제 같은, 거대한 실험의 도입에 함부로 동의해 준 처사는 더더욱 여당의 자세라고 하기 어렵다.
주민소환법안은 민주노동당이 무더기 법안 상정에 함께 넣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여당 스스로도 먼저 나서 이번에 처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막판에 상정하게 됐다고 한다.
지방권력에 대한 직접 통제장치인 주민소환제는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직접민주주의의 주요 제도라는 의미가 있지만 반대와 불복, 저급한 정치선전이 여전한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자칫하면 엄청난 부작용을 부를 수 있는 제도임도 분명하다. 더구나 이번에 통과된 법은 소환 청구요건이 허술한 문제점이 당장 지적되고 있다.
여야를 떠나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듭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런 종류의 사안이다. 단순히 어느 시점 표결에 필요한 몇 표를 얻기 위해 거래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정의 수준이 정말 한심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