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마산 석정초등학교 탁구부 체육관. 깡마른 체격의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들어서자 체육관에 걸린 사진이 한 눈에 들어왔다. 88년 서울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남규였다.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라켓도 국제대회에서 사라져가던 펜홀더를 잡았다. 소년은 왼손 펜홀더로 세계탁구계를 호령했던 유남규의 뒤를 밟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은 채 라켓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뒤 농심삼다수에 입단해 자신의 영웅이었던 유남규 감독과 사제관계를 맺으며 그의 꿈은 현실화되어 갔다. 주인공은 한국 남자탁구 차세대 에이스로 급부상한 이정우(22). 탁구계에서는 이미 ‘제2의 유남규’로 주목 받으며 성장한 한국탁구의 숨은 비밀병기다. 왼손 펜홀더에 지능적인 플레이, 호쾌한 드라이브까지 유남규와 쏙 빼닮은 그는 독일 브레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50년 만에 한국을 결승에 진출시키며 스타로 발돋음했다.
창원 남산고 2학년이던 지난 2001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를 제패하며 기대주로 떠 오른 그는 2003년 삼다수에 입단, 유남규 감독의 집중조련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유감독이 “스폰지처럼 빨아들인다”고 표현했을 만큼 그의 성장속도는 놀라웠다.
입단 1년 만에 2004 SBS 탁구챔피언전에서 선배 오상은을 제치고 실업탁구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해 국제대회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대만오픈에서 단식 우승컵을 안더니 중국오픈에서는 8강에서 ‘한국킬러’ 마린을 무너뜨리고 홍콩의 에이스 고라이첵까지 잡아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계랭킹도 20위권으로 껑충 뛰었고, 프로투어 랭킹에서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복식에서는 천하무적이다. 지난해 선배 오상은과 짝은 이뤄 출전해 4개 국제대회에서 패권을 안았다.
유 감독은 “아직 내 전성기에 비해 80%밖에 안된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유승민과 함께 중국 선수들과 금메달을 다툴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차세대 에이스 이정우를 앞세운 한국탁구가 아테네올림픽에 이어 또 하나의 신화를 꿈꾸고 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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